역사(驛舍) 건축의 변천사
1. 초기의 건축(1899~1906년)
이 시기에 축조된 철도 역사는 한국 철도 역사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고 있으며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고 있다.
1.1. 경인선
경인선 개통 당시 역사 및 건축 시설들은 여객의 운송보다는 화물 운송과 철도 운영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시설에 한정되었다.
철도 역사를 비롯한 철도 사무실, 종업원 사택, 창고 등 모든 시설은 서울보다는 일본과 직접 연결되는 인천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각 역사의 경우 인천 역사 91 평, 남현 역사 22.5 평, 남대문 역사 46 평이고 서대문 역사와 그 외의 중간 역의 역사는 대략 16 평 정도였는데, 그 중에서도 용산 역사는 7.5 평에 불과하였다. 이는 경인선의 성격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인천과 서울 간, 즉, 한국 내부의 교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본에서 인천으로의 운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철도 개경인통 당시의 노량진역>
(가) 인천 역사
1900 년 5 월에 준공된 인천 역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역사로서 철도 도입기의 가장 대표적인 철도 역사라고 하겠다. 단층의 아연 철판 경사 지붕에 흑백 벽돌조로 축조되었다. 약 91 평 면적에 대합실은 1 등, 2 등 대합실과 3 등 대합실로 분리되었다.
경인선의 부설이 처음으로 미국인 모스에 의해 시작됐기 때문에 인천 역사는 미국 철도 역사의 구성 형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에 따라 이 시기의 다른 역사들과는 그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나) 남대문 역사
서울의 현관으로서 남대문 역사는 1900년 경인선의 역사로 개설되었다. 남대문 역사의 면적은 약 46만평으로 부지는 남쪽행의 승강장이 높았다. 구조는 단층으로 평면 형태는 인천역과 같은 ㄱ자형으로 되어 있었으며 평면이 ㄱ자형으로 된 것은 각 부분이 대합실과 역무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1.2. 경부선
경부 철도는 미국인 모스로부터 인수받은 경인 철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일본의 치밀한 계획 하에 부설권을 획득했기 때문에 일본은 경부선의 역사 및 모든 건물을 모두 다 일본식으로 축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가 다른 한국에서 특히, 중부지방 이북에서 일본식 건축물은 무리여서 변경이 불가피하였다.
부설 초기 철도 건축물들은 가설 건축물로 설치되어 볏집에 통나무구조로 된 극히 조악한 상태로 매우 부실한 구조였다.
또한 러일전쟁으로 공사가 속성으로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가건축물들은 정비되지 못하고 당면한 수요에 맞추는데 급급하였다. 이러한 가설 건축물들은 후에 역무원 숙소로 이용되다가 잡용물품창고로 사용되었다.
경부철도는 영등포와 초량에서 기공식을 한 후 남북 양단으로 나누어 공사를 진행했는데 이에 따라 철도 역사는 남북에 따라 다소 차이를 갖고 있다. 부산 방면의 남부 지역 역사는 초량 역사만을 제외하고 목조 단층의 초가에 처마를 매달은 일본식 가설 건축물이었고 북부지방에서는 보온시설이 부가된 간단한 구조물이었다. 건평은 10평 내외로 지나치게 협소하고 지붕은 아연 철판을 둘렀다. 이에 따라 일정한 방침, 규격을 갖고 있는 일본식 가설건축물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1.3. 경의선
임시군용철도감부에서는 1904 년 경의선 부설 공사에 착수하여 우선 인천 전동의 전환국 자리에 본부 청사로서 벽돌의 단층집을 건축하였고 그 후 용산, 신막, 평양, 정주, 신의주 등에 각 건축반사무소를 건축하였다.
이 5 개의 건축반을 중심으로 경의선 선로의 건설 및 건축 공사가 진행되었다. 경의선 역시 러일전쟁 중 황급하게 축조되었기 때문에 경인선, 경부선의 역사 및 기타 부속 건축물과 다를 바 없이 대체로 급조된 목조의 가설 건물로 지어졌다.
특히 임시군용철도감부는 공사에 필요한 재료를 제공하고 시공 방법에 있어서도 군대식으로 지었기 때문에 마치 군대 막사와도 같았다. 역사는 갑형, 을형, 병형, 정형의 4 종류 표준 설계를 정하여 축조되었다. 각 형의 표준 평수는 각각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갑형 역사의 경우 약 50 평에서 60 평에 이르고 을형은 48 평, 병형은 38 평, 정형은 30 평 정도에 해당한다.
경의선은 전시 중에 군용 철도의 개념으로 부설되었기 때문에 시행은 건축반 감독하에 제반 재료를 공급받고 청부공사에 의해 급조된 가건축물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2. 1906년~1917년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한반도 종단 철도를 완성한 일본은 한국철도의 운영권을 1906 년 9 월 1 일 임시군용철도감부에서 통감부철도관리국으로 넘겨 철도운영을 일원화함과 동시에 철도를 통해 한반도를 사실상 지배해 나아가던 시기였다. 1910 년 한일합방에 의해 조선총독부철도국에 철도 운영이 넘어간 후 1917 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위탁 경영하기 이전의 시기에 해당한다.
한국 철도 역사는 이 시기에 철로의 확장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개량사업이 이루어진다. 도입기에 설치되었던 대부분의 역사 및 부속 시설들이 점차적으로 임시군용철도감부에 의해 마련된 갑ㆍ을ㆍ병ㆍ정 형의 표준설계에 의해 개축과 신축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도입 초기에 나타났던 무계획적이고 가설 건물에 불과했던 역사들이 임시군용철도감부의 군대 막사와 같은 통일된 표준에 의해 정비되었다.
경인선의 인천역과 마찬가지로 호남선의 경우 모든 역에 대한 설비가 일본을 향한 종착역인 목포역에 편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경원선의 경우 역시 호남선과 별 차이가 없는데 청량리역과 연천역, 철원역, 복계역, 고산역, 원산역이 중심역이다.
입면 형태상의 유형으로는 크게 서양의 고전적 양식을 모방한 역사와 일본의 전통적인 목조 양식을 그대로 표현한 역사, 또 이들을 혼합시킨 역사로 구분할 수 있다.
서양의 고전양식을 모방한 역사는 용산역사와 부산역사 및 신의주역사 등의 몇몇 역사에 국한되고 대부분의 역사는 일본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표현했다.
경의선의 평양 역사와 호남선의 목포 역사와 군산 역사 등이 이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역사이다.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부산 역사 및 신의주 역사에 호텔을 결합시킨 역사 호텔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역사호텔의 등장은 단순히 영업적 측면이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한 것 이전에 철도 역사와 호텔의 건축적 기능에 있어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1. 서양 고전 양식
(가) 용산 역사
용산 역사는 원래 1900 년 7 월 8 일 경인선의 보통 역으로 7.5 평의 목조건축물로 축조됐으나 1904 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1906 년 11 월 1 일 경의선의 시발역으로서 목조 2 층(일부 3 층)의 서양식 건축으로 준공되었다. 연면적은 480 평(1,587 ㎡)으로 1925 년 경성 역사가 새로 증축되기까지는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역사였다. 용산 역사는 1910 년 12 월 한국 철도 역사로서는 처음으로 철도를 횡단하는 육교가 설치되었다.
<용산역사>
(나) 부산 역사
부산 역사는 처음에는 임시정거장으로서 초량과 부산간의 선로의 연장과 함께 1908년 3월 준공하여 다음날 4월 1일부터 영업을 개시하였다. 역사는 건축 면적 358평, 연면적 689평(2,238㎡), 건물 최고 높이가 약 22m로 벽돌조의 2층 건물이었다. 붉은 벽돌에 흰색 화강석을 섞어 전체의 구성은 르네상스를 바탕으로 한 절충 양식으로 공사는 하야카와 하지매가 수행하였다.
1층에는 각 대합실과 매표실과 전신실, 역원실, 하물 취급실, 식당 욕실, 화장실을 두고 2층 이상은 호텔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역사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신의주 역사
철도역사에 호텔을 결합시킨 역사호텔로는 부산 역사 이외에 1912 년 10 월 준공된 신의주 역사를 들 수 있다. 신의주 역사는 경의선의 종착역으로서 경부선의 종착역이었던 부산 역사와 공통점을 지닌다고 하겠다.
신의주 역사는 연면적 387 평(1,279 ㎡)의 3 층 벽돌조 건물로 1 층은 역사로 사용됐고 2, 3 층은 호텔 및 레스토랑으로 이용되었다. 내부는 칸막이 벽이 설치되었으며 2, 3 층에는 마루가 깔렸다. 외부는 붉은색 벽돌에 흰색 화강석을 이용해 각층을 분절 시키는 수평 띠선을 둘렀다. 특히 1 층과 2 층의 역사 부분은 역사와 호텔의 다른 기능을 표현하려는 듯 다른 층의 수평선 보다 두텁게 둘러져 있고 1 층은 10 개의 아치를 강조하여 2, 3 층과의 분리를 표현하고 있다.
전체적인 입면의 분위기가 이태리 르네상스의 팔라조를 연상시키고 있는 이 신의주 역사는 과도한 장식이 배제된 매우 세련된 구성을 하고 있다.
2.2. 목조 양식 : 군산 역사, 목포 역사, 청량리 역사, 원산 역사
1914 년 개통된 호남선과 경원선의 경우도 임시군용철도감부에 의해 개통된 마산선과 같이 대부분의 역사가 일본의 전통적 목조양식의 단층으로 건축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역사들은 표준 설계에 의한 일본의 전통양식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평면 형태는 대개 직사각형으로 일본 전통적인 평면 구조와 유사하다. 호남선의 군산 역사(1912년 3월 준공), 목포 역사(1913년 5월 준공)와 그리고 경원선의 청량리 역사, 원산 역사(1914년 준공)등이 이러한 역들에 해당된다.
2.3. 혼합형 역사
일본의 전통목조건축형태와 서양의 고전적 양식을 결합시킨 유형이다. 초기의 일본 전통적 목조양식의 역사에 서양의 고전적 양식의 역사를 결합시킨 형식이다.
(가) 대구 역사
대구 역사는 1905년 1월 1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는데 1915년 4월 개축, 준공되었다. 목조 2층으로 건축면적은 373평(1,233㎡)으로 2층은 식당과 주방으로 사용하였다. 2층의 면적은 66평으로 부산 역사의 이미지를 풍기는 서양식이고 측면의 1층 부분은 일본식목조로 구성되었다. 부속동은 철골조로 되었고 지붕을 철판으로 둘렀다.
(나) 대전 역사
대전역사는 대구 역사와 마찬가지로 1905 년 1 월 1 일 보통 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19 년 개축, 준공하였다. 그 규모와 양식에 있어서 대구 역사와 대동소이하다. 외벽은 시멘트 인조석 물갈기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고 1920 년 5 월 우리나라 철도 역사로서는 처음으로 지하도를 설치하였다.
<대전 역사>
3. 만주 위탁기(1917~1925년)
1917 년 7 월부터 1925 년 4 월까지 약 7 년 9 개월 동안 일본은 한국철도를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위탁 경영하도록 하였다. 이는 한국과 만주를 하나로 묶어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를 통해 한국 철도와 만주 철도의 경영을 일원화하였다. 이로 인해 조선총독부는 주로 지휘 감독을 수행하고 경영에 따른 이익금을 받고 국유 철도의 개설 및 개량 계획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역사로는 함경선의 청진 역사, 1919년 5월 준공된 개성 역사와 사리원 역사, 1924년 5월에 개축된 선천 역사, 신막역사 등이 있고 1923년 4월 1일 준공되어 현존하는 철도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역사인 경부선의 조치원 역사, 1925년 9월 30일 준공된 경성 역사(현 서울 역사) 등이 있다.
3.1. 조치원 역사
조치원 역사는 1923 년 준공된 이후 6.25 에 의해 일부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다. 이 시기의 특성에 따라 벽돌조의 1 층 역사로 면적은 213.76 ㎡에 달한다.
철도 역사에 대한 현존하는 도면자료는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조치원 역사는 과거의 상태에서 별로 변함이 없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당시 승강에 따른 철도 역사의 평면 구조, 대합실과 역무실과의 관계, 도로와의 관계, 광장의 역할, 입면의 구성 방식 등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3.2. 경성 역사(현 서울 역사)
경성역사(현 서울 역사)는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로 1900 년 경부선의 역사로 개설된 남대문 역사를 개축한 것이다. 가로면에서 볼 때 2 층, 철로에서 볼 때 3 층으로 1922 년 6 월 기공하여 1925 년 9 월에 준공하였다. 경성 역사 역시 이 시기의 다른 역사들과 마찬가지로 벽돌조로서 부분적으로는 화강석을 사용했다. 시공은 조선호텔을 지은 아오미 하지매가 맡았다.
역사 자체만 볼 때 경성역사는 지하 2,747 ㎡, 1 층 2,637m ㎡, 2 층 1,452 ㎡로 1914 년 준공된 일본 동경역사(건축면적이 2885.1 평의 지상 3 층)의 1/4 에 불과한 것이었다. 초기 예산 작성시 과도한 예산이 문제가 되어 축소되었는데 준공과 동시에 협소함이 인식되어서 장래 증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였다.
경성 역사는 현재 남아 있는 일제시대의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는 건물로서 표면에 붉은색의 타일을 부착하고 흰색의 화강석 수평띠선을 두르고 벽면 모서리에 귓돌(Quoin)을 설치하여 변화를 유도하였다.
이러한 수법은 부산 역사나 신의주 역사 등 당시 서양의 고전적 양식을 채용한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의장 수법으로 경성 역사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역시 중앙 돔이다.
비잔틴 건축에서 이용되는 펜텐티브(Pendentive)를 이용하여 4 각형의 평면에 돔을 올려놓고 있는데 펜덴티브에서 얻은 우너형의 뼈대 위에 돔을 올리지 않고 펜덴티브와 돔을 결합시켜 돔의 높이를 낮춤으로써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는 전체적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외관에 대해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4. 1925년~1945년대
이 시기 한국 철도 역사는 1920년대 초반 서양 건축의 형태를 차용한 다소 장식적이었던 철도 역사는 사라지고 이 시기의 건축물은 크게 5가지 유형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4.1. 맞배형 지붕의 역사
이 시기 역사들 중 가장 오래된 유형으로 경전선의 군북 역사(1923년), 반성 역사(1925년), 남문산 역사(1925년), 개양 역사(1925년) 등이 이에 속한다.
4.2. 일본식 지붕이 중첩된 역사
이러한 유형의 역사로는 전라선의 미평 역사(1930년, 면적 99.44㎡), 율촌 역사(1930년, 면적 112.6㎡), 경전선의 득량 역사(1930년, 면적 112.0㎡), 원창 역사(1930년, 면적 112.0㎡) 등으로 주로 순천 지방 철도청 소속의 역사에 이런 유형이 나타난다.
4.3. 지붕에 삼각형의 박공면을 강조한 역사
이 시기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유형이다. 이러한 유형은 일본에 의해 도입되어 철도 역사를 비롯해 일본의 의해 축조된 다른 유형의 건축에서도 이러한 구성을 하고 있다.
공장과 같은 형태의 이러한 역사는 영등포 역사, 춘천 역사(1940년) 등에서 다소 발전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경선의 경북 안동 역사, 순천 역사 및 남경성 역사 등도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중 만포역(1939년 9월 28일 개통식)은 박공면을 다소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공면 밑에는 3개의 아치로 된 창문을 두고 평평한 박공 벽면에 거친 돌을 불규칙하게 박아 넣어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가) 나주 역사
호남선의 나주 역사는 호남선 부설에 따라 1913 년 준공했다가 1925 년 다시 신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목조 단층의 곱슬레이트 지붕으로 면적이 258.37 ㎡에 달한다.
(나) 전의 역사
전의 역사는 1903 년 경부선의 역사로 지어졌는데 1941 년에 다시 신축되었다. 현재 경부선에 남아 있는 이러한 유형의 역사로는 서청리 역사(1932 년 12 월 31 일), 성환 역사(1939 년), 소정리 역사(1942 년), 부강 역사(1938 년), 신탄진 역사(1938 년), 희덕 역사(1937 년), 심천 역사(1934 년), 추풍령 역사(1941 년), 직지사 역사(1941 년), 대신 역사(1942 년), 아포 역사(1941 년), 약목 역사(1941 년), 신동 역사(1942 년), 지천 역사(1941 년), 남성 역사(1930 년), 물금 역사(1939 년) 등으로 6 ㆍ 25 이후 벽돌로 새로 축조된 역사를 포함하면 보다 더 많아진다.
이 시기에 있어서 중소 도시역사의 가장 보편적인 유형이라고 하겠다.
(다) 천안 역사
천안 역사는 1933년 12월 10일 기공을 한 후 1934년 6월 7일 준공되엇다. 연면적은 601.5㎡로 역본체 면적은 461.3㎡에 달했다. 구조는 목조 단층으로 지붕은 망형의 석면 슬레이트에 일부 동연판으로 둘렀다. 현재 역사는 1986년에 신축하였다.
(라) 영등포 역사
영등포 역사는 경성토목합자회사에 의해 1935년 1월 16일 기공되어 같은 해 6월 24일 준공되었다. 설계는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가 담당하였고 감독은 경성 철도사무소 건축구가 맡아서 하였다. 목조 단층에 지붕은 석면 슬레이트로 되어 연면적은 499㎡에 높이는 12m로 채광이 특별히 고려되었다.
<영등포 역사>
(마) 영천 역사
경북의 영천 역사는 목조의 단층 역사로 지붕은 석면 슬레이트로 되어 있다.
면적은 498.75㎡로 1938년 7월 8일 합자회사 이시다 하자매에 의해 준공되었다. 설계 및 감독은 철도국 경북 안동사무소에 의해 실시되었다.
4.4. 모더니즘 양식의 역사
서양의 모더니즘적 경향의 흐름은 결국 우리나라 철도 역사에도 영향을 미쳐 경사진 지붕이 사라지고 박스형의 단순한 조형적 구성을 한 역사들이 나타나게 된다. 서양의 모더니즘을 소화해 낸 철도 역사는 극히 소수에 불과한데 이리 역사가 대표적인 역사다. 호남선의 이리역은 군산 지선과 경전선의 분기역으로써 여러 번의 증개축을 거쳐 1936 년 11 월 9 일 대 개축을 단행하여 1937 년 7 월 10 일 준공하기에 이르렀다.
설계는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가 맡았으며 시공은 영등포 역사를 시공한 경성토목합자회사가 담당했다. 건축 면적 556 ㎡에 벽돌 및 철근 콘크리트조로 외장은 타일로 붙이고 대합실 벽면은 테라조를 발랐다. 이리 역사는 단순한 박스형의 여러 매스들이 수직 수평의 구성을 통해 결합되어 있으며 매끄러운 벽면은 장식이 배제된 채 수직창에 의해 깊이 파진 형식을 갖고 있다. 시기상으로 볼 때 상당히 앞서 간 작품이라고 볼 수 있으며 매스의 구성이 뛰어나다.
<이리 역사>
4.5. 한국 전통 양식의 역사
이 시기의 철도 역사에 있어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수원을 비롯해서 유서 깊은 지역의 역사에 한국 전통 건축의 형태가 채택되었다.
이러한 유형의 역사에는 경부선의 수원 역사를 비롯해서 경의선의 서평양역사,경전북부선의 전주, 남원역사, 도문선의 남양역사, 함경선의 신북청, 군선, 명천, 역사 그리고 동해중부선의 경주ㆍ불국사 역사 등이 있다.
(가) 수원 역사
수원 역사는 원래 경부철도회사의 시설로서 목조 단층의 단순한 건물이었는데 전체 공사비 57,175엔이 투입되어 1927년 12월 5일 새로 착공하여 1928년 8월 20일에 준공하였다. 설계는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에서 담당했고 시공은 사토 마다로가 실시하였다. 건축 면적은 570.50㎡,부속 동 56㎡이다.
(나) 전주 역사
전주 역사는 조선 왕조 이씨의 본관인 전주에 위치한 역사로 1929년 5월 27일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 22일 준공하였다. 설계는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가 담당했고 시공은 수원 역사를 시공한 사토 마다로가 공사비 41,800엔으로 실시하였다. 면적은 631평(부속동 포함)으로 벽돌조에 일부 철근 콘크리트의 단층으로 평면은 직사각형으로 단순화 시켰으며 지붕은 기와 지붕으로 축조하였다.
(다) 남원 역사
남원 역사는 목조 단층으로 1931 년 6 월 13 일 기공하여 같은 해 9 월 20 일 준공하였다. 전체 면적은 433.05 ㎡로 역사 본체는 307.55 ㎡이고 현관은 17.10 ㎡,기타 107.40 ㎡로 설계는 철도국 공무과 건축계에서 담당하였다. 시공은 경성의 고스기 하지매가 맡아서 하였다.
(라) 경주 역사, 불국사 역사
경주 역사는 불국사 역사와 함께 조선 총독부 철도국이 사설 철도인 경동선을 매수하여 선로를 개량함에 따라 1937 년 7 월 7 일 기공하여 1937 년 11 월 15 일 준공하였다. 면적 737 ㎡으로 공사비 54,000 엔을 투입했다. 기존의 수원 역사나 남원 역사 등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역사는 이 지역의 출토물을 통하여 신라의 건축 양식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현관의 포치, 지붕, 격자 천장의 무늬 등에서 특히 신라의 수법을 채택하였다. 건축비를 줄이기 위해 벽돌조에 인조석을 붙이고 깊은 처마에는 공포 등을 없애고 석회칠을 하여 간소화하였다.
지붕의 기와는 형태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유지하기 위하여 취두, 치미 등은 당시의 모양을 본뜨고 회령의 유약기와를 사용해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
<불국사 역사>
5. 복구기 (1946~1959)
전후 복구기 역사는 목조ㆍ블럭조ㆍ벽돌조가 대부분이다. 1958, 1959년에 신축된 대전, 청량리, 김천, 천안역이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양식건물이며, 1955년에 신축된 영월역사가 철근콘크리트조로서 한식으로 지어졌다.
이중 건물 구조상, 건축양식상 특징있는 역은 다음과 같다.
(가) 덕소역
1958. 6.21 역사가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벽돌도 단층기와지붕이며, 면적은 98m2이고 특징은 건축양식으로는 일식 건물로 전후 복구기의 벽돌조 역사로 대표적이다.
(나) 영월역
1955. 12.30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벽돌조의 한식단층 기와지붕이며 면적은 역사가 263.5m2, 부속가가 102.1m2이다. 특징으로는 전후 복구기에 건설된 역사로 벽돌구조이면서 전통한식으로 지역적 특성에 어울리게 지붕도 한시기와로 처마선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다) 대전역
1958. 12,28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로 철근콘크리트조 3층 슬래브 지붕이며, 면적은 1,671m2이다.
특징으로는 전후 복기 건축으로서 현대식 철근콘크리트구조의 대표적인 역사이다.
6. 성장기 (1960~1979년)
성장기 역사의 특징은 목구조 건물과 블록구조 건물이 점점 사라지고 벽돌구조가 대부분이며, 점차 철근 콘크리트구조물로 신축되어 현대화되기 시작하였다. 역사 개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선로개량과 더불어 많은 역사도 현대식으로 신축되었다. 이 중 역사성 있는 건물, 건물 양식상 특징 있는 역은 다음과 같다.
(가) 순천역
1960. 10.30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철근콘크리트조 2층 평지붕이며, 면적은 1,035m2이며 부대 건물은 206.9m2이다. 특징으로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서 라멘(Rahmen) 형식의 대표적인 역사이다.
(나) 익산역
1978. 11.10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철근콘크리트 기와 지붕 (지하1층, 지상3층)이며, 역 본체 면적은 4,775.6m2이며 부대건물은 984m2이다. 특징으로는 이리역 폭발사고로 1978년에 라멘구조로 신축되었다는 점이다.
(다) 용산역
1932. 3.5 역사가 신축(국철)되었고, 면적은 1,112m2 벽돌조 3층 슬래브구조였다. 그 이후로 1978. 12.30 전철 역사가 준공되었고, 면적은 1,322m2로서 철근콘크리트조 2층 슬래브구조이다. 특징은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로 성장기의 벽돌조 건물의 대표적이라는 점과 수도권 전철 운행에 따른 전철역사는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별도 신축되었다는 점이다.
7. 현대역사 (1980년 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건축양식도 다양화되어 한식ㆍ양식등이 지역적 특성에 맞게 건립되는가 하면 민자 역사의 등장으로 역사가 여객과 화물의 수송만을 취급하는 곳이 아닌 지역 발전의 주도적 역할과 휴식공간과 쇼핑센터로서의 기능도 함께 하게 되었다. 건축양식면에서도 한식ㆍ양식은 물론 현대 건축기법을 도입을 도입하여 기술의 선진화, 포스트 모더니즘화로 다양한 역사 건축이 신축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가) 도안역(충북선)
1980. 10.12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벽돌조 단층슬래브구조이다. 면적은 199m2이며 특징은 충북선 복선화사업에 따라 역사를 신축하게된 현대식 건물로서 벽체는 벽돌을 사용하고 지붕은 철근 콘크리트슬래브로 처리한 대표적인 역사이며 외형이 단순하고 기능 위주의 역사로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나) 전주역
1981. 5.25 역사가 신축 준공되었고, 건물구조는 철근콘크리트 구조, 한옥기와 지붕이며, 면적은 1,506m2 이다.
그 특징은 현대식 구조와 전통양식이 혼합된 양식으로 구조는 철근콘크리트구조이면서 건축양식으로는 전통한식 구조이다.
<전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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