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역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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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철도노선의 특성을 고려한 계획수립 | 2019.10.21 |
6 | 철도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합리적 공유 | 2019.08.27 |
5 | 철도의 속도 미학 | 2019.08.06 |
4 | 한반도철도망구축과 대륙철도연결의 전망과 과제 | 2019.07.23 |
3 | 초기 철도운영에 있어 연계성과 운영실태 | 2019.07.22 |
기타 | |
철도노선의 특성을 고려한 계획수립 | 2019.10.21 |
철도노선의 특성을 고려한 계획수립 우리나라 철도망은 지리적,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 철도가 달리는 길은 우리나라의 지형적인 조건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철도망은 조선시대의 도로망과도 유사하다. 조선시대의 도로인 10로의 특징은 남과 북으로 향하고 있고 동과 서로는 산맥이 있어 쉽게 이동로가 확보되지 못하였다. 모두 서울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14일이나 소요되는 등 도로를 통한 이동이 많지 않았다. 또한 당시의 도로는 역관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도로보다는 오히려 수운이 발달하여 세금과 물자이동의 수단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의 예전 도읍은 배산임수 즉 뒤로는 산이 앞에는 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하여 자연스럽게 수운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름철 수해로 많은 피해를 입곤 하였다. 이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철도망은 자연스럽게 지형조건을 반영하여 형성되었고 그 영향을 받았다. 1899년 이후 철도망의 부설은 기존의 도시를 연결하는 한편 새로운 변화가 생겨났다. 기존의 도시와 함께 부산, 김천, 대전, 조치원, 평택, 익산, 신의주 등 새로운 도시가 태어났다. 철도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관공서, 시장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철도 부설과 관련하여 고려된 것이 수로, 도로와의 연관성, 입지의 편리성, 그리고 당시 국제정세로 일본의 대륙진출이라는 의도가 함께 들어 있었다. 노선부설에 있어 고려된 것은 뱃길과의 연결이었다. 우리나라의 서울과 인천, 일본의 도쿄와 요코하마, 상해, 타이완, 영국 등의 최초의 철도도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초로 철도가 운영된 영국의 해양 무역 도시 리버풀은 역사와 상업으로 유명한 항구였다. 리버풀은 대영 제국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미국으로 이주하는 북유럽인과 노예 등 인구의 대량 이동을 위한 주요 항구로 사용되었다. 또한 근대 하역 기술과 수송 체계, 항만 관리의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으며 이 항구를 생산도시인 맨체스터와 철도로 연결한 것이다. 타이완의 경우에도 타이페이에서 항구인 기륭이 먼저 개통되었다. 미국 최초의 철도인 그랜이트 철도(Granite Railway)도 화강암수송으로 유명한데 철도와 수운으로 수송하였다. 이는 당시 항구가 무역과 군사의 중심이었고 이를 내륙까지 연결하는 교통수단이 철도였다. 철도운영자는 버스와 배를 함께 운영하여 연계수송이 자연스러웠고 국제수송도 담당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내륙수로가 있었던 금강의 호남선 강경, 압록강의 경의선 신의주도 그러한 예이다. 또한 남한강을 따라서 중앙선이 부설되었다. 1912년 자료에 의하면 내륙산업의 개발과 교통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대동강 및 금강 항로를 개설하고, 전자는 진남포 기선합자회사에, 후자는 이를 강경에 거주하는 일본인에게 항로 운항을 명령하였다. 1913년 4월, 연안항로의 일부를 개정, 선박회사인 조선우선에 남쪽 연안 다도해항로 2선을 개시하게 하고, 이어서 1914년 4월, 압록강항로를 창설하였다. 이러한 항로는 각각 평양, 신의주, 강경의 철도역과도 연계되었다. 앞에서 철도노선이 지형과 연관이 깊다 했는데 초기 역 위치는 넓고 평탄한 곳에 입지하였다. 때문에 역은 수해에 취약했다. 대전역, 용산역, 신의주역 등은 수해로 많은 피해를 입은 기록이 있다. 초기 이러한 노선부설의 배경을 가진 철도는 최근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주거지의 교외화로 철도역 주변을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다시 철도역으로 모이고 있다. 환승중심의 교통체계인 TOD (Transit Oriented Development)가 바로 그것이다.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이동시간의 절약과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역 주변에 생활시설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동대구역이 대표적인 사례를 보이고 있으며, 역과 도시철도, 버스터미널, 쇼핑센터가 모여 집적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일전에 방문한 일본 동북지방의 이와테(岩手)시는 역 주변 4km 이내로 시청, 병원, 은행, 학교 등의 주거시설이 다시 밀집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암스테르담의 경우 항구와 철도의 연결, 독일철도회사는 연계교통을 모두 책임지는 등 철도본래의 기능을 다 하고 있다. 또한 철도의 사회적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역의 다양한 기능을 직접화하고 철도의 장점인 속도 편익이 지역 간에도 형평에 맞게 추진되고 있다. 이에 일본은 거점 도시 이동을 3시간이내로 하는 고속철도망을 촘촘히 구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새로운 철도망을 계획하는데 있어 항만과의 연결, 도로망과 연계, 동서 지역 간 철도망 부설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철도와 항만의 직접적인 환적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용자입장에서 철도와 도로의 단절 없는 운행을 해야 하며 주요 거점 도시 간에도 고속철도를 연결(예 광주?대구) 과 역 중심개발로 승객들이 신속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철도가 자리매김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과 노력이 수반되어야만 철도 본연의 역할 회복과 철도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린 종합교통체계를 확립할 수 있게 된다. 기본에 충실한 철도망계획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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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합리적 공유 | 2019.08.27 |
철도문화의 사회적 가치와 합리적 공유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누리고 지배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철도를 좋아하는 나는 여행을 할 때면 철도와 관련된 문화시설과 박물관에 들르곤 한다. 최근에도 가까운 의왕의 철도박물관에 다녀왔다. 내부 수리중이어서 보고 싶은 자료만 보고 돌아 왔지만 우리나라를 달리던 파시형 증기기관차, 대통령전용객차, 경인철도레일 등 다양한 철도문화유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왕 철도박물관은 1981년 10월5일 용산 철도고등학교 내 작은 전시실에서 1988년 1월26일 의왕으로 옮겨 신축 개관하였다. 1997년 4월1일 서울역에 2관을 개관하였으나 2004년 폐지되었으며 의왕으로 이전·통합되었다. 1만여 점이 넘는 유물 중 2008년 10월 17일 대통령전용객차 외 8점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10년 1월1일 1종(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도박물관은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와 질곡을 같이 하였으며 역사를 조명하고 경제성장의 동력을 확인하는 사회경제적 유산이다. 해외의 경우에도 철도를 근대화, 산업화 발전의 주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영국과 일본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기도 한다. 따라서 철도박물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철도를 연결하는 구제적인 자료를 보존하고 설명하는 실제적인 장소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박물관의 기능은 역사적인 자료와 보존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자료로 중요하다. 그간 해외 철도자료 수집을 위해 영국, 일본, 중국, 타이완, 스위스 등 각국의 철도박물관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다. 철도박물관의 기능은 첫 번째로 철도와 관련된 문화와 자연에 대한 기록과 기억의 계승이다. 가능한 한 원형 상태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수 있다. 우리들은 철도박물관에 전시된 유·무형의 유산을 통해 철도와 관련된 과거와 현재의 삶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환경요인의 변화에 대한 정보와 시야를 넓혀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교육과 체험의 역할이다. 우리나라 철도가 가져온 발전상을 통해 일반 대중은 자긍심과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을 고양하고 전통적 문화 가치를 함양할 수 있다. 또한 교육적으로 학습과 체험이 가능하여 시민들의 지적수준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철도소장품을 통해 철도기술의 변화와 연속성과 철도산업의 발전상을 공유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철도의 산업과 경제적 역할이다. 현재 박물관은 지역개발과 관광사업의 하나로서 지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있다. 박물관 판매장이나 레스토랑, 주차장, 인접한 호텔과 상가는 관광객의 욕구를 충족, 소비성향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 또한 박물관 소장품에 대한 캐릭터 및 상품화는 박물관 재정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상당한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물관 주변이 하나의 문화단지로 형성되고 관광사업과 연계된다면, 결과적으로 직업의 창출과 고용이 증대되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여가선용과 재미를 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편하게 즐길 수 있고 필요할 때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철도관련 문화재는 박물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과 건축물, 교량, 차량, 철도가 가져온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있다. 이번 여름에도 필자는 철도관련 자료 수집을 위해 강경역과 장항역 그리고 대전역, 연무대역 주변을 돌아보았다. 철도가 만든 지역의 변화와 문화 등을 확인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러한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귀중한 것들을 함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미래 세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 일까하는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철도문화와 박물관 등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제도와 틀의 도입이다. 영국과 중국은 철도문화재와 박물관에 국가지원체계가 확립되어 있으며 일본의 경우는 기업지원금에 의존하여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회사의 지원에 관해서는 과거 오사카 교통박물관의 예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이곳은 1962년 오사카 환상선을 완성한 기념으로 국유철도가 이 박물관을 개관하였지만, 1987년 일본 철도가 민영화가 됨으로 인하여 「서 일본철도주식회사」가 소유하여, 교토역 근처의 우메코지 증기기관차박물관과 함께 「교통문화진흥재단」에서 위탁 운영하였다. 이는 교토 서일본철도박물관에서도 같은 형태로 운영되었다. 운영주체인 서 일본철도회사에서는 박물관 사업을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하고 있어 향후 우리나라에도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한편 2007년에 개관한 사이타마에 있는 동 일본철도박물관은 「동 일본철도문화재단」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동 일본철도문화재단의 경우도 자체수입이 약 40%, 나머지 60%정도는 동 일본철도주식회사에서 지원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도 철도박물관의 운영은 연간 약 90%의 정부 지원과 지역의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용객은 무료로 이를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의 경우도 철도 문화 보존을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와 함께 체계적인 지원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등록문화재의 확충, 새로운 철도박물관의 추가 건립, 문화유산의 보존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 철도관련법에 문화재 보존조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철도문화 보존을 위한 행·재정적인 조항을 추가하고 이를 근거로 문화 보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회적 가치가 더욱 중요시 되는 시대에 이를 공유하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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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의 속도 미학 | 2019.08.06 |
철도의 속도 미학 철도는 빠름과 느림이 함께 공존하는 교통수단이다. 우리는 고속철도를 통해 점차 빠르게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스피드는 전 세계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숫자로 보더라도 각국의 고속철도 분담률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속철도이용자가 2010년에 41,303천명(1일 113,000명)에서 2018년에 84,379천명(231,175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여 1일 이용객이 23만 명을 넘고 있다. 고속철도 이용분담률은 인.km기준으로 전체 철도의 67%를 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동 아시아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데 일본 중국 타이완 등 이 지역은 높은 경제성장과 많은 인구가 분포되어 효용성 높은 교통수단인 고속철도의 비중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13년 일본의 여객교통 분담률(인·km기준)을 보면 2010년부터 개인교통수단인 승용차를 제외하고 분담률을 발표하고 있는데 철도가 72%, 항공이 15%, 버스가 12%, 택시가 1%를 차지하고 있다. 2016년 3월에 홋카이도 신칸센(신아오모리~신하코다테 홋토)이 개업하여 일본 신칸센 노선망은 연장거리 2,764.5km가 됐다. 신칸센의 분담률은 인·km기준으로 30%에 달한다. 주요 도시 간 고속철도 이용이 보편화된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개인교통을 포함해 계산하는 프랑스는 2013년 여객교통 분담율(인·km기준)에서 철도가 11%, 영국9%, 독일8%를 차지한다. TGV의 국가 프랑스는 주요거점과 지역에도 기존선을 활용한 고속철도 서비스로 전국에 고속철도서비스를 제공한다. 2015년 프랑스의 장거리구간 수송현황을 보면 항공이 11.3%, 철도가 48.9%, 도로가 39.8%를 차지하고 있는데 고속철도는 장거리수송에서 42.8%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고속철도의 활용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고속철도는 3가지 전략이 있다. 10,000엔, 4시간, 30일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운행구간인 도쿄~오사카에서 운임은 편도 10,000엔 이하, 전국을 4시간 이내 운행 가능할 것, 30일 이전에도 예약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쿄~오사카의 경우 항공의 할인운임일 경우 10,000엔 이하로 신칸센의 보통운임이 13,850엔, 할인하더라도 11,230엔으로 철도가 비싸다. 시간의 경우도 항공의 대기시간 등을 비교하면 약 3시간으로 비슷하다. 따라서 철도가 운임 경쟁력을 더 가지려면 10,000엔 이하로 운임이 싸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4시간의 법칙은 전국어디서나 철도로 4시간 이내로 도달할 수 있을 경우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목적지까지의 도달시간이라 환승을 하더라고 시간적 경쟁력을 가지면 철도가 타 교통수단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리가 1,000km 전후의 도쿄~후쿠오카, 오사카~가고시마간은 압도적으로 항공수요가 크지만 800km 정도의 신칸센 4시간이 걸리는 도쿄~히로시마, 나고야~후쿠오카 구간에서는 양 교통수단의 수요가 거의 비슷하다. 이 거리보다 짧을 경우에는 철도수송의 수요가 훨씬 커서 신칸센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고 또한 연계교통을 이용하더라도 4시간 이내이면 철도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선진각국은 고속철도를 적극적으로 건설하여 이를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최근 홋카이도신칸센 등이 개통되고, 호쿠리쿠 신칸센이 개통되어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을 만끽할 수 있다. 도야마와 가나자와까지 호쿠리쿠 신칸센이 빨리 가서 그곳의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도쿄에서 도야마로 신칸센으로 이동하여 지방철도인 도야마 지방철도와 연계하여 3000미터가 넘는 북 알프스산맥의 자연과 지역 철도역과 느림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5년 고속철도의 분담율(인·km)이 2005년에 46.8%에서 현재 67%에 이르고 있는데 이를 통해 빠르게 이동하여 지방에 위치한 역들이 활성화되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지방 철도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 여수와 황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수까지 고속철도가 운행되면서 서울에서 여수까지 3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어 한려수도관광이 당일로 가능하게 되었다. 이에 여수는 작년에 제주를 제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가 되었다. 아울러 지방철도역도 고속철도와 연계되면서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부선 황간역이다. 황간은 대전이나 김천구미역까지 고속철도를 이용하고 여기에서 무궁화호로 연계하여 이동하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해방 이후 황간은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였지만 별다른 산업이 없어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역이 위치한 황간면의 인구는 1972년 10,694명에서 1996년에 6,513명으로 2006년에서 5,052명, 2017년 인구는 4,646명으로 줄었다 .(인구밀도 53명/㎢, 임야 78%) 1996년 황간역 자료를 보면 철도이용객은 월 2,800명(93명/일)으로 이용객이 계속 줄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속도로 개통과 대체 교통수단의 발달, 지역 인구의 감소 등 여건의 변화에 따라 2013년도에 이르러 폐지 대상으로 검토되면서 존폐 위기를 맞이하였다. 당시 황간역의 강병규 역장과 황간 중학교 35회 동기 모임인 『황간마실』의 정태경 회장 등이 주축이 되어 고향역 지키기에 뜻을 모으고,‘지역주민과 함께 가꾸는 아름다운 문화영토’라는 슬로건 아래 황간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 사업을 「문화 플랫폼 황간역」이라고 명명하였다. 황간역은 2013년 8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총 59회의 공연을 하였고, 맞이방 갤러리에서 48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공연은 노래와 연주, 시낭송 등이 어우러지는 음악회를 위주로 때로는 연극, 동화구연 등 이색 무대를 연출하기도 한다. 황간역 음악회는 연 인원 1천명이 넘는 출연자가 순수 재능기부로 유치원 어린이에서부터 학생, 주부, 이장 할아버지 등 마을 주민과 타지에서 온 연주단, 때로는 전문 음악인도 함께 출연하여 소박하고도 따뜻한 정을 나누는 음악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매달 열리는 전시회는 이미 금년 말까지 월별 전시 예약이 다 되어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곳도 주민들이 자치활동 프로그램으로 만든 생활 공예품이나 그림, 서예작품은 물론 전국 각지의 지명도가 높은 작가들의 작품전이나 철도문화전 등으로 연중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황간역은 작은 시골역이지만 지역과 사람, 문화가 서로 만나 교류하는 문화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새로운 지역의 문화 플랫폼이자 여행관문으로써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테마역이 되고 있다. 이번 여름휴가에는 이러한 빠름과 느림이 공존하는 철도를 체험해 보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되리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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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철도망구축과 대륙철도연결의 전망과 과제 | 2019.07.23 |
한반도철도망구축과 대륙철도연결의 전망과 과제 1. 문제의 제기 최근의 남북철도연결에 대한 논의 등으로 북한철도의 개량과 신설 그리고 이를 통한 대륙철도연결에 관한 조사와 분석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남북 철도의 연결을 염두해 두면서 북한철도의 현황과 대륙과의 연결에 있어 주요거점역인 신의주와 훈춘지역을 살펴보고자한다. 이러한 북한과 국경역의 분석을 토대로 남과 북의 철도연결에 있어서 고려해야하는 구축방향으로서 한반도네트워크와 대륙철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2. 북한의 철도현황 남과 북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2016년 기준으로 인구는 남한이 5,127만 명, 북한은 2,515만 명, 북한의 국민총소득(GNIㆍ명목 기준)은 34조 2,360억원, 남한은 1,496조 6,000억원으로 경제규모가 남한이 약 45배 나 규모가 크다. 1인당 GNI는 남한 2,968만원, 북한 139만원으로 21.4배 차이가 난다. 발전 설비 용량 역시 북한은 725만 3,000㎾로 남한 9,321만 6,000㎾의 13분의 1 수준이다. 북한이 앞서는 것은 국토 면적과 천연 자원 분야이다. 국토 면적은 북한이 12만 3,138㎢로 남한 10만 284㎢보다 1.2배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 생산량은 남한이 174만톤, 북한 2,709만톤, 철광석 생산량은 남한 69만톤, 북한 548만톤으로 북한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북한의 교통현황을 보면 철도중심의 ‘주철종도(철도를 주로하고 도로를 보조교통수단)’의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5,248km의 철도노선을 보유하고 있다. 여객의 60%, 화물의 90%를 철도가 담당하고 있다. 남한은 철도연장이 3,918km로 북한의 연장이 좀 더 길다. 도로의 경우는 남한이 87,534km 북한이 23,479km로 남한이 약 3.8배이다. 북한을 통한 국제철도망은 신의주를 통한 중국 TCR과 연결, 회령을 통한 만주철도연결(TMR), 나진~하산을 통한 시베리아 철도(TSR)과 연결되어 활용여부에 따라서 발전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해운보다 철도의 경우 역을 중심으로 지역개발, 자원개발 등의 장점과 산업과 협력이 가능한 부문이 많아 향후 평화확보와 함께 동반성장이 가능한 분야이다. 나진을 중심으로 한 경제자유지역은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으로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역으로 이를 통과하여 러시아 철도와의 연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한철도는 투자와 유지비용 부족으로 운영 상태는 매우 열악하여 90%가 단선이며 표정속도는 30~50km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남북철도 협력분과 회담에서 언급된 동해선과 경의선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남과 북이 경부선이 경의선과 연결되고 동해선은 금강산역을 통해 금강산청년선으로 안변에 연결되고 이는 경원선(현재 강원선)과 함경선(현재 함북선) 으로 연결되는 노선이다. 먼저 경의선은 국제열차와 연결되며 북한 내에서 가장 중요한 노선이다. 경의선은 평의선 평양~신의주구간 224.8km, 평부선 평양~개성 186.5km으로 나누어진다. 이 노선은 1906년에 경의선(경성~신의주)으로 개통되었다. 이 노선을 통해 현재에도 심양 경유로 북경, 모스크바를 잇는 국제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대부분 노선이 단선이며 33.6km만이 복선으로 운영되고 있다. 본 노선은 북한철도에서 가장 중요한 노선으로 정주에서 북으로 향하는 평북선에는 평양에서 야행 준급행과 각역 정차가 직통으로 청수까지 운행되고 있다. 청수를 통해 중국국경과 심양으로 연결된다. 신안주를 통해서는 만포선으로, 간리와 서포를 통해서 평라선이 연결되고 있다. 평양 시발의 5열차의 소요 시간을 보면, 평양~신의주(224.8㎞)를 5시간 5분에 운행되고 있는데 표정속도는 44.3km이다. 1996년 시각표에서는 같은 5열차는 4시간 30분으로 되어 있다. 1942년의 급행 흥아는 현재보다도 긴 백마선 경유였음에도 불구하고 동 구간 236㎞를 4시간 15분에 주파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보다 느린 속도로 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신의주를 통해서는 중국 단동에 연결된다. 신의주와 단동에는 하루에 최대 8번 왕복의 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열차를 견인할 때는 중국의 입환용 내연 기관차가 사용되고, 북한의 전기 기관차가 국경을 넘어 오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의선의 구간별 물동량을 보면 상행의 경우 평양근처의 석탄, 신의주근처에서는 광물, 하행의 경우 석탄의 비중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표1> 평의선의 상하행 물동량(1984년) (단위:%) 자료:북한사회과학원『북한지리정보:운수지리』, 1988년 5절 북한의 주요철도노선참조 만포선의 경우 기본 화물은 석탄과 목재이다. 하행에 석탄의 비중이 큰 것은 자강도 전지역에 대한 연료공급과 관련이 있으며 상 방향 석탄수송은 구장탄광지대에서 생산된 석탄의 개천선을 통해 소비지로 수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표2> 만포선의 상하행 물동량(1984년) (단위%) 자료:북한사회과학원『북한지리정보:운수지리』, 1988년 5절 북한의 주요철도노선참조 평부선은 경의선의 일부로 평양~개성을 잇는다. <부>는 부산이다. 이 노선은 현재 판문점까지 연결되어 있다. 1945년의 남북 분단 때에는 38선의 북측 사리원까지가 북한의 노선이었다. 한국전쟁에서 군사 경계선의 서측이 남하했기 때문에 개성이 종점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전에는 외국인을 철도를 통해 수송하였지만, 평양~개성 사이에 고속도로가 생긴 이래 외국인은 개성, 판문점까지 버스로 이동하였다. 시각표에는 평양~개성 사이의 차는 2개 열차밖에 게재되어 있지 않다. 준급행과 각역정차가 각각 하나씩 있다. 평양에서 급행이 직통하지 않는 주요 도시의 하나이다. 게다가 하나 있는 준급행도 신의주발로 평양을 심야 통과한다. 평산(구. 남천)에서 원산 방면으로 북한지역을 횡단하는 청년이천선이 1972년에 완성되었다. 사리원에서 황해청년선이 나뉘고 황해선 은파에서 은율선이 분기한다. 북한의 남서부에 해당하는 황해남도 일대의 철도는 전쟁 전에는 사철 조선 철도가 경영했다. 사리원에서 중요 항만 도시인 해주로 향하는 황해선이 연결되고 해주에서는 평양 경유의 만포행 급행이 있다. 해주에서 동쪽으로 연장되는 백천선은 일찍이 평부선 개풍(구. 토성)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이것도 한국전쟁의 격전지였기 때문에 지금은 끊겨 있다. 은파에서의 은율선은 대동강 하구에 있는 서해갑문 경유로 남포까지 통하고 있다. 서해갑문은 관광지로서 외국에게 개방되어 있다. 도중의 평산에서 청진까지 3일정도 소요되는 장거리 준급행이 있다. 한편 동해선의 경우는 현재 북한의 금강산역에서 안변에서 경원선과 연결되고 원산에서 함경선과 접속되고 이는 청진에서 남양으로 연결되면 중국 도문, 두만강으로 연결되면 러시아 하산에 이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제진에서 북한의 금강산까지 연결되어 안변까지의 노선이 현재 금강산청년선이다. 전쟁 전에는 동해 북부선의 일부로, 현 한국의 양양까지의 노선이었다. 전쟁 후, 휴지되어 있었던 것이 1997년에 금강산까지의 101㎞를 전철화 노선으로 부활되었다. 한편 경원선은 현재 북한에서는 강원선으로 불린다. 선명은 역명이 아니라 강원도에서 온 것이다. 구 경원선 서울~원산 사이 중에 남측의 서울~신탄리를 뺀 평강~원산 사이에 원산~고원 사이(구 함경선)를 덧붙인 노선이다. 한국전쟁 전의 조선 총독부 철도국의 시각표에서는 145.8㎞였는데 현재 145.1km이다. 1944년에 산악 구간인 복계~고산사이가 전철화되어 데로이형 전기 기관차가 이 구간에서 운행을 개시해 한반도의 본격적인 전철화의 효시가 되었다. 한편 함북선은 청진에서 나진까지의 326.9km이며 남양에서 철교를 지나 도문을 통해 중국으로 연결된다. 이 노선은 청진에서 고무산, 회령, 삼봉, 남양, 온성과 경유해 두만강을 따라 남하해서 홍의, 선봉을 지나 나진에 이른다. 청진에서 나진까지의 소요시간은 13시간27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만강선은 몰골에서 두만강(9.4㎞)을 통해 러시아로의 접근이 가능한 노선이다. 러시아 측에서 표준궤보다 넓은 러시아 게이지(1,520㎜)가 두만강까지 연결되어 있다. 남양~도문 사이도 북한의 내연 기관차가 담당하는 국제 구간이다. 최대 하루 4번 왕복하는 열차가 중국 측에 입선하지만, 객차로는 쓰이지 않고 모두 화물 열차가 되었다. 또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도 철도교가 하나 세워져 있다. 두만강~하산 사이를 잇는 이 철도는 세계 최장의 국제 열차도 달리는 구간이지만, 평라선의 선로 상태 악화로 인해 운행 열차가 감소하여 현재는 1량 편성의 객차 열차가 매일 1번 왕복, 국경을 넘을 뿐이다. 향후 남북한 철도 연결에 있어 검토되어야 할 부문이 북한철도의 현재 상황을 진단하여 이를 기초로 열차가 운행하는 신호, 통신의 개선과 현대화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2007년 당시 7일간 개성~신의주간의 공동조사 자료를 통해서 보면 노반은 원래 복선의 선로가 있었는데 유지보수의 어려움으로 단선으로 운영 중인데 상태가 좋은 것을 상하선의 지그재그로 운영하고 있다. 노반, 옹벽, 절토 및 성토구간 등 노산 일반구조물의 변상개소가 많아 노반의 보강이 필요하였으며 궤도분야의 경우는 궤도재료 마모, 훼손, 부식 및 단면 부족상태가 심하여 열차안전운행을 위해서는 선로의 안전성 유지가 시급하였다. 레일은 편마로가 심하였으며 레일 패임 현상과 이음매볼트 체결상태가 좋지 않다. 교량과 터널은 건설당시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정밀한전진단결과에 따라 보수, 보강 범위와 수준, 계속여부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철 및 전력설비는 직류를 사용하고 있으며 장력구분장치 설비 등이 노후화되었다. 신호선비는 10개역이 계전기식 연동장치 사용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기계식 연동장치, 완목식 신호기를 색등신호기로 일부 변형하여 사용하고 있다. 통신설비는 폐색전화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무선통신장치는 전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차량분야는 기관차는 대체로 노후하고 출력은 남한의 70%수준으로 객차와 화차 모두 내구연한이 초과되어 노후화가 심한 상태이다. 당시 표정속도를 측정한 결과 신의주에서 판문점까지 44km로 조사되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단기적인 열차운행은 가능하나 열차안전운행확보를 위해 선제적인 안전보강조치가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는 전면적인 개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표3>을 보면 북한철도현황은 최소곡선반경등이 400m 이내로 지형적인 여건과 개량이 안된 것을 알 수 있다. 경원선 쪽이 산악지형을 반영하여 급경사에서 운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3>북한철도 현황(1945년 자료를 참고로 재작성) 자료: 선교회『조선교통사』, 삼신사, 1986, pp.377-380 <표4> 북한철도 교량연장 자료: 선교회『조선교통사』, 삼신사, 1986, p.326 3. 국경지역의 거점 역 중국에서 단동역과 훈춘역은 매우 의미 있는 역이다. 단동역은 북한과 인접해 있으면서 황금평 경제특구에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훈춘역은 북한과 러시아의 인접하여 나선경제특구와 연결되는 주요 거점역이다. 자료: 연합뉴스 단동은 북한의 신의주와 연결되는 주요한 국경도시이다. 단동시는 북한의 신의주시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임과 동시에 한반도와 가장 인접한 중요 항구로, 전체 시 총면적은 1.5만㎢이며, 그 중 도심의 면적은 800㎢이다. 단동에서 평양까지는 철도로 220km, 서울까지는 42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동 항구에서 인천항까지의 거리는 245해리, 일본 나가사키항까지의 거리는 590해리이다. 중국 동남지구와 한국, 일본과 지근거리에 있는 육로와 해로가 모두 열려있는 요충지로, 우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단동시는 비교적 좋은 공업발전 기초조건을 구비하고 있는데, 풍부한 자원을 기본으로 편리한 교통망과 원활한 전기공급 등 투자대상지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처럼 단동은 향후 우리나라 TKR철도를 바로 연결되는 중요한 국경역이다. 과거 단동과 심양을 연결하는 노선은 안봉선으로 불리웠는데 과거 러·일전쟁시대에는 궤간 762mm의 군용경편철도로서 건설되었다. 일본은 압록강을 건너 1904년에 봉황성까지 점령하자 1904년 11월에 단동으로부터 봉황성간을 개통시켰고 1905년 2월에는 심양까지 개통시켰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드조약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뢰순, 대련-장춘간의 철도를 인수하여 1906년11월에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인수한 구간의 궤간은 러시아의 1524mm의 광궤에서 1435mm의 표준궤로 개축하였다. 이 때 안봉선은 만철선의 지선이 되었고 1911년 11월1일에 협궤로부터 표준궤로 개축되었다. 이로부터 만주와 단동 조선의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에 의해 우리나라와 중국이 연결되게 되었다. 1911년 11월2일부터 양국의 직통열차가 운행하였다. 단동역은 중국주요도시와 고속철도로 연결되고 있다. 먼저 단동과 대련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1일 12왕복하고 있다. 단동과 심양간의 고속철도는 1일 38왕복이다. 재래선은 5왕복이다. 고속철도의 발착이 1일 100편, 재래선이 10편이 운행하고 있다. 중국의 재래선은 고속철도와 같이 궤간이 1,435mm표준궤이기 때문에 같은 홈에 재래선과 고속철도가 열차가 혼재하고 있다. 단동역을 종점으로 하는 심양과 단동을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2013년 9월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 208km로 운행속도는 시속 250km로 양 도시를 1시간에 연결하고 있다. 이는 기존 재래선이 3시간 걸리는 것을 1/3로 단축하였다. 이 고속철도는 2010년 3월에 착공하였다. <사진> 단동역 한편 재래선도 단동과 심양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북경에서 평양구간의 국제열차가 매일 운행하고 있다. 한편 단동과 대련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2015년 9월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은 293km 이며 열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200km이다. 20개의 정차역이 존재하고 있다. 이 노선은 현재 중국과 북한의 북경을 연결하는 동변도 철도의 일부노선이기도 하다. 한편 러시아와 북한과 연결되는 국경역으로 지리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훈춘역은 1992년3월 훈춘시가 대외개방도시로 지정되어 도문에서 훈춘까지 철도건설이 시작되어 1993년 9월에 개통되었다. 훈춘과 길림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총 길이 360km구간으로 시속 250km로 설계되어 2015년 10월에 개통되었다. 고속철도역은 이 때 새롭게 만들어졌다. 길림에서 출발한 고속철도는 둔화~조양천~연길~도문~훈춘으로 연결된다. 훈춘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 역으로 일찍이 두만강지역 개발목표에 합의하여 추진되고 있다. <표5>두만강지역 개발의 기본 목표 훈춘역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입접해 있다. 장춘~훈춘~자루비노항을 통해 속초와 부산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지역은 장춘~길림~연지~도문~남양~함북선으로 나진으로 연결되는 노선이기도 한다. 훈춘역에서 러시아TSR이 연결되는 국경역인 그라스칸역까지 40km구간은 광궤와 표준궤의 복합궤가 운용되고 있다. 장래 단동역과 훈춘역은 북한과 연결되는 주요역으로 기능할 것이며 향후 동아시아 교통허브로서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북한과 중국 러시아 두만강 국경(방천에서 촬영) 4. 한반도 철도망과 국제철도망의 구축방향 북한의 인프라 계획에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한반도의 통합교통망과 국제교통망과의 연계이다. 우리나라의 교통망계획에서 먼저 고려해야 할 제3차 국가교통망계획(2016~2020년)을 보면 서해선과 동해선이 완성되어 북한의 경의선과 경원선과 연결이 가능하다. 서해선과 동해선의 경우 복선전철로 최고속도 250km의 고속전철이 투입될 예정이다. 도로의 경우도 우리나라 도로정비기본계획(2011~2020년)에서도 서해안과 함께 동해안에 고속도로가 건설될 예정이다. 한편 북한을 통한 대륙과 연결되는 국제철도망은 현재 3곳에서 열차가 운행 중에 있다. 신의주를 통해 중국(단동)과 연결되며, 강계와 만포를 통해 역시 중국(집안)과 연결된다. 남양으로 역시 중국(도문)과 연결되고 있다. 러시아와는 두만강과 하산으로 연결되고 있다. 장래 신의주는 TCR로 강계는 몽골철도와 두만강은 TSR과 연결이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 단동과 훈춘까지 고속철도가 운행 중에 있다. <지도1> 한반도 철도망 따라서 남북한과 중국과의 연결을 고려할 경우 자연스럽게 고속철도를 건설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프라 개발에 있어 주요한 내용은 인프라로서 효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수송, 관광활성화, 지형적인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는 인프라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최근에 발표한 「5개년계획」을 보면 에너지문제의 해결을 중요하고 최우선의 과제로 하고 1) 전력문제 2) 석탄광업과 금속공업, 철도운수부문 3) 기계공업, 화학공업, 건설부문과 건재공업부문 4) 농업과 수산업, 경공업부문 5)국토관리사업 6)대외경제 의 6개로 나누어서 각 항목에 대해서 발전계획을 내놓았다. 그 중 철도는 석탄과 금속과 함께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분야로 언급하면서 먼저 철도수송의 신속성과 정확성, 원활성과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휘시스템의 확립, 과학화를 추구한다. 두 번째로는 철도공장, 기업의 기술구조를 촉진하고 교류전기기관차와 같은 근대적인 수송수단의 개발과 생산, 세 번째로는 철도망의 완비, 철도의 중량화, 고속화의 추진 마지막으로는 철도시설과 장비의 근대화, 관리·운영의 정보화를 추진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교통인프라의 방향은 자원과 연계하여 이를 원활하게 수송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임을 시사해 주고 있다. 1) 자원 남북이 지난 10·4선언에서 합의한 경제협력 사업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북한 지하자원 개발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8년도 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북한 주요 광물자원의 잠재가치는 3조,9033억달러(4,200조원)로 추정된다. 이는 한국의 지하자원의 1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북한에는 광산이 696개 분포하고 있으며 금, 아연, 철, 동, 몰리브덴, 마그네사이트, 인상흑연, 인회석 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는 우리 정부가 선정한 10대 중점 확보 희귀금속인 텅스텐과 몰리브덴이 있다. 특히 마그네사이트, 중석, 몰리브덴, 흑연, 중정석, 금, 운모, 형석 등 8종의 광물 매장량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간다. 광물자원 개발협력 후보지로는 함경남도 단천이 가장 먼저 꼽힌다. 단천은 40여개 광산이 반경 100㎞ 안에 밀집돼 있는 국제적 규모의 북한 최대 광산지대이다. 검덕연·아연광산, 대흥 마그네사이트광산, 룡양 마그네사이트광산이 있어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지난 2007년에 광물자원공사가 투자환경 현지 실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북한의 화학비료공장은 함흥질소비료공장, 안주의 남흥 요소비료화학공장, 순천의 석회질소화학공장이 있다. 자원 활용과 산업재로 중요한 철강산업의 시작은 약 100년 전인 1918년 일본의 미쓰비시 제철이 건설하고 일본제철이 운영한 겸이포제철소(현 황해제철소)가 있다. 황해북도 송림시 송산동(겸이포) 100만평 부지에 선철 50만톤과 강재 30만톤의 설비능력을 갖추고 있다. 1938년 청진제강소로 출발한 김책제철소, 이어 청진제철소, 성진 제강소 등이 설립됐다. 대부분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해방 후 북한은 기존의 철강산업을 기반으로 중공업 우선 정책을 추진하면서 황해제철소, 김책제철소, 청진제강소 등 제철소들을 복구하고 일관제철소로 확장했다. 탄광으로는 순천지구탄광연합기업소, 안주지구탄광연합기업소 등이 유명하다. 이러한 자원분포를 고려할 때 교통인프라 건설은 경의선과 경원선 함경선을 주요 축으로 철도망을 건설하고 도로망은 이를 보조하는 쪽으로 건설되어야 할 것이며, 이 경우 고려해야 할 것은 국제운송을 고려하여 항만연계를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현재 자유무역항으로는 라진, 선봉, 청진, 함흥이 있으며 기타 무역이 가능한 항만으로는 원산, 남포, 해주, 신포, 송림 등이 있다. 현재 북한은 철도역중에서 집중 화물역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도착화물의 집중화를 실현하기 위해 화물 하치장을 설치한 역으로 89개에 가까운 집중 화물역을 운영하고 있다, 집중수송의 목적은 초기에 모든 역이 화물을 취급하였으나 석탄을 비롯한 큰 화물의 경우 작업에 필요한 기계 확보의 문제와 집중수송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으로 지정 역은 다음과 같다. <표6>철도국 별 집중 화물역 ※ 위 역 이외에 금강산 청년선(안변-금강산 청년역간)과 남동선(온천역과 남동역간) 내의 집중 화물역 설치 여부는 미확인. (자료: 김한태 『북한철도』 2018년 참고해서 작성) 위 집중 화물역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역은 서포 역으로 종합 화물장을 가지고 있고 별도로 목재 화물장, 석탄 화물장, 산적 화물장, 강재 화물장이 있으며 종합 화물장에는 수천 톤의 시멘트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와 비료 창고가 있다. 평라선의 상하행 물동량을 보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무연탄이며 그 다음은 광석, 금속, 목재이다. 룡양광산에서 단천마그네샤 공장으로 보내는 마그네 사이트수송, 김책체철연합기업소의 금속, 두만강의 목재를 평양 쪽으로 수송하는 물동량 등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시멘트의 경우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와 연관이 있다. 양곡과 소비재는 서부에서 이쪽으로 수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7> 평라선의 상하행 물동량(1984년) (단위:%) 자료:북한사회과학원『북한지리정보:운수지리』, 1988년 5절 북한의 주요철도노선참조 2) 관광 교통인프라 건설에 있어 주요하게 고려할 것은 관광지와의 연계이다. 동해선과 인접해 있는 금강산과 명천, 주을 등 온천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개발과 원산의 마식령스키장, 함북의 금강으로 불리우는 칠보산, 청진, 개성의 역사적 유적관광, 평양과 남포, 사리원, 해주 등이 관광지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관광지를 통과하는 노선도 경의선과 경원선과 평라선(동해선)이 통과하는 지역이다. 아울러 인구밀집지역인 평양과 청진을 연결하는 평라선의 노선도 매우 중요하게 부각될 전망이다. <지도2> 북한 주요관광지 분포 <사진> 1940년대 교과서내의 북한 관련내용 3) 역사성과 지형조건 무역 등을 고려한 국경도시를 중점적으로 개발될 것인데 이를 활성화하는 교통인프라가 건설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국경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주요한 도시는 단동과 연결하는 신의주, 중국집안과 연결하는 만포, 중국의 도문과 연결하는 남양 등의 도시가 있다. 현재 북한의 무역상대로 중국은 2016년에 83.7%를 차지할 정도로 높기때문에 중국과의 연계를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라고 하겠다. 상대적으로 러시아는 무역비중이 같은 해를 기준으로 1.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에서 도시규모가 크고 성장가능성이 높은 것이 신의주이다. 신의주의 위치는 평안북도이며 도소재지이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연결되는 도시이다. 북한에서 가장 큰 국경도시이다. 중국과 철교가 연결되어 있어 평양~베이징 열차가 정상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신의주 화장품공장은 북한의 최대의 화장품 공장이고 제지공장. 방직공장. 화학공장을 가지고 있는 경공업이 발전한 도시이다. 최근에 신의주의 개발과 함께 철도역의 대대적인 개축에 대한 기사가 전해지고 있다. 신의주 역은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역으로 한국전쟁 때 파괴되어 지금은 단층의 2명 3선의 역으로 국제열차의 세관검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역이다. 해방 직후 북한의 철도망은 국제수송과 함께 자원과 관련이 있다. 자원과 관련해서는 단천의 마그네사이트개발(조선마그네사이트 개발철도), 수풍댐(평북선), 평양의 석탄(서선중앙철도), 산림개발(신흥철도) 등이 운행되었다. 관련사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사실 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기술한 『조선교통사』 자료를 통해 살펴보고자한다. 압록강에 가설된 국제 철도교는 총 3개로, 경의선과 안봉선을 잇는 압록강교, 만포선과 매집선을 연결하는 만포교 그리고 수풍댐 발전소가 건설됨에 따라 압록강교와 만포교의 중간에 가설된 청수 철도교가 있다. 청수 철도교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수풍댐 발전소는 압록강 수력 발전 계획의 7지점 가운데 최초로 건설되었으며 최대 출력(약 60만km)을 가진 발전소였다. 신의주에서 약 80km 상류(만포교에서 약 200km 하류)에 위치한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에 있으며 약 100m 높이의 제방이 맞은편 만주국 동변도 관전현 비갈구 강변까지 이어졌다. 1937년 가을 공사에 착수하여 1943년 말까지 전체 발전 능력을 완성하였다. 댐 발전소는 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에 위치하여 대공사에 필요한 시멘트·철재·기계류 및 각종 자재와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서 한 번에 대량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철도를 부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와 국방상의 문제도 고려하여 조선 및 만주의 압록강 수력 발전회사가 조선 측에 평북 철도회사, 만주국 측에 압북철도회사를 설립하고 압록강을 지나 조선과 만주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였다. 선로는 경의선 정주 역을 기점으로 정주·노성·삭주 3개 군을 종단하여 북상한 후 압록강변의 수풍 및 청수에 도달하였으며, 압록강에 국제철도교를 가설하고 맞은편 장강에서 동변도 관전현의 중앙을 지나 북상한 후 장순·관순을 지나서 만주 국유 철도 안인선의 관수동 역에 도달하였다. 약 200km 길이의 노선으로 선로 구배, 곡선 반경 및 구조물의 기준은 조선 철도국 건설 규정에 따른 갑종 선로로 하였다. 청수 철도교는 길이 약 600m(경간 60m 트러스 2련 및 18m 판횡목 24련)로, 압록강 중심점을 분계점으로 조선 측을 평북선(약 120km), 만주국 측을 압북선(약 80km)이라 하였다. 평북선은 1937년 9월에 착공하여 1939년 10월에 준공되었고, 청수철도교는 1939년 4월에 착공하여 1939년 6월에 준공되었다. 청수는 댐 하류 약 6km 지점에 위치했으며, 5km 하류 맞은편 장순 하구 부근은 콘크리트 골재의 채취지로, 수풍댐 콘크리트 용적 약 350만㎥에 사용된 대부분(약 80%)의 조골재를 채취하여 본선 화차로 운반하였다. 1939년 홍수기 이전에 청수 철도교를 완성시켜야만 예정된 시기 안에 수풍댐을 완공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본교는 단적으로 말하면 수풍댐 발전소 공사용 콘크리트의 조골재 운반을 위한 철도교이기도 하였다. 교각의 높이는 기초 푸팅 위 18m이며, 하상의 지질은 옥석이 많은 자갈층으로 암반까지는 하심부의 트러스 교각이 가장 깊은 7m, 그 밖의 장소는 7m 이하이다. 10월부터는 수량 감소로 조선 측은 대부분 육지화 되어 공사가 비교적 용이하였다. 따라서 하심부 공사는 뒤로 미루고 육지부 작업만 진행하여 12월 중순까지 하심부를 제외한 80%가 완성되었으며, 갈수기에 접어들면서 하심부 작업에 착수하였다. 겨울철에는 -35℃까지 기온이 내려가므로 골재 난방을 위하여 고유의 온돌식 난방을 채택하였으며, 콘크리트를 반죽하기 위하여 보일러를 설치하여 뜨거운 물을 공급하였다. 이리하여 1939년 1월 하순까지 하심부의 콘크리트 작업을 종료하고, 곧바로 트러스 횡목을 가설하기 위하여 스테이징 비계 조립에 착수하였다. 트러스 강재는 겨울철에 신의주 부근에서 가교 지점까지 약 90km의 긴 거리를 얼음 위로 운반하였으며, 트러스 조립은 2월말에 시작하여 3월 중순에 끝마쳤다. 판형은 평북선 수송을 위하여 4등분으로 분해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연식 가설법을 변경한 2경간 연결 매달기식을 채용하여 1939년 6월까지 가교 공사를 전부 끝마쳤다. 한편 두만강유역의 도문선은 북선 지역의 주요 항구인 웅기를 기점으로 두만강 우측 연안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아오지~훈계~온성 및 남양을 거쳐서 이번 매수선인 구도문철도회사선 종단의 동관진에 이르는 162km 길이의 선로로, 이를 도문 동부선이라고 한다. 반면 동관진에서 함경선의 종단인 회령에 이르는 58km 길이의 매수선을 도문 서부선이라고 한다. 이를 광궤로 개축하여 동부선에 연결시키면 국경 철도로 사용할 수 있어 12개년 신규 계획선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선로였다. 웅기를 기점으로 하는 국경 일대는 간도, 훈춘 및 소련령과 접하는 삼국의 접양지로서 예로부터 군사·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연선 각지의 유망한 탄전과 농지의 생산물과 두만강 상류 처녀림의 임산물 외에도 맞은편 평야의 농산물과 훈춘 부근의 석탄 등을 반출할 수 있어 국가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선로였다. 관련되어 건설된 남양과 도문의 국제교량철도의 경우 본 교량은 만주 사변 후의 동 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맞춰 가설된 것으로 압록강·삼봉교 가설 당시처럼 복잡한 외교 절차를 거치지 않은데다, 관련 설비와 기술 모두 삼봉교 건설 당시보다 현저하게 발전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만주국 철도 전체를 위탁 경영하고 있던 만주철도가 본 교량의 건설을 담당하였으며, 도문선 전선 개통 전인 1932년 8월 6일 공사에 착수하였다. 당시 만주철도는 경도선(신경~도문간)의 건설을 마치고, 도가선(도문~가목사 구간) 건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교량은 함경북도 온성군에 소재한 도문선 남양역과 맞은편인 길림성 연길현 도문역 사이에 가설되었으며, 형(桁)에는 일본 요코가와(?河) 교량제작소 및 가와사키(川崎) 차량 제작회사가 제작한 단선 상로 강판형이 사용되었다. 교대 기초 공사에는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교각 기초 시공법에는 상자틀 침하 공법을 채용하였으나, 상자틀 부족으로 인해서 일부는 널말뚝 공법으로 보완하였다. 착공 후 약 8개월이 지난 1933년 4월 철도교 공사가 끝나고, 6월 20일에 공도(보도)가 준공되었다. 총 공사비는 42만 3천 엔이었다. <사진> 대륙철도노선도(일제강점기) 한편 혜산선 길주~혜산진 구간 141.7km는 1937년 11월에 전선 개통되었으며, 만포선 순천~만포교 구간 303.4km는 1939년 10월에 전선 개통되어 모두 압록강 연안에 도달하였다. 만포교를 통하여 만주국 해집선 집안역으로 이어졌으며, 신 국제선으로서 새로운 축을 형성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도3> 門脇椿峨 『신의주중학교 회지』 1992년 12월 79페이지(https://search.yahoo.co.jp/image/search) 향후 교통인프라는 신설 또는 개량을 해야 할 것인데.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교통인프라 건설시 가장 중요한 자연조건은 지형조건으로 이 또한 새롭게 해석하고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지형은 북부와 동부가 높고 서부와 남부가 낮아지는 동북고 남서저의 형태로 전체면적의 약 8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평균해발고도는 440m이고 1,000m 이상 되는 지역은 12.8%이며, 2,000m가 넘는 지역은 0.26%로 저산성 산지이다. <지도4> 우리나라 지형도 백두산(2,744m)을 비롯하여 관모봉(2,540m)·차일봉(2,504m) 등 2,000m 이상이 되는 산들이 60여 개가 솟아 있고 동북산악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마고원은 해발평균고도 1,000m가 넘는 고지 준평원을 형성하고 동부산악지대에는 태백산맥이 동해쪽으로 치우쳐 북부서~남남동 방향으로 뻗는 가운데 금강산(1,638m)이 솟아 있다. 북한의 지형은 장기간 거듭된 지각운동과 침식·퇴적작용으로 산지·평야·계곡·해안·고원등의 변화가 매우 심한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의 도로와 역원을 보더라도 지형조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철도의 경의선과 만포선 경원선 함경선 축을 따라서 입지해 있었다. 이러한 지형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철도망은 기존의 노선 통과를 해야 할 것이지만 새로운 변화와 장래 계획 등을 참고하여 신설노선을 검토해야 한다. 과거의 노선이 자원개발 등이 중점적이었다면 이제는 미래지향적으로 대륙연결, 경제성장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4) 정책과 기술과제 향후 남북의 철도연결을 위해서는 정책과 재원과 기술적인 과제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먼저 정책적으로는 현재의 북한철도의 상태를 보면 현재 언급된 경의선과 동해선의 경우 개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며 경의선은 중국과의 연계, 동해선의 경우는 러시아와의 연결을 염두 해 둔다면 경의선은 여객과 화물, 동해선은 화물이 중심이 될 것이다. 이 경우 경의선의 경우 고속화의 더욱 필요한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비용에 대한 부분이다. 향후 북한개량비용이 수준에 따라 많은 비용이들 것으로 예측되어 비용분담은 장기적으로 남과 북이 이익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의 북한경제가 수출 감소와 무역적자 등의 위기를 맞고 있어 더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향후 북한의 싼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하고, 북한의 철도이용을 통해 대륙물자가 수송된다면 남한의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므로 이러한 상호가 이득을 보는 방향의 추진이 필요하다. 향후 추진되어야 할 주요한 노선인 동해선의 인프라개량을 사례로 들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동해선은 고성~함흥(260.5km)와 함흥~라진(486.2km) 로 총 746.7km를 가정하였다. 이는 현재 라진부터는 하산까지 개량된 노선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해선 현대화는 상당한 비용과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2개 구간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시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단계로 고성~함흥 260.5km, 2단계는 함흥~라진 486.2km이다. 시나리오 1안은 기존선 개·보수 2안은 신선 건설(복선전철)이다. 1단계의 개보수안 노선의 초기 건설당시 성능 수준으로 개·보수, 신호·통신설비를 개량하며 구조물은 정밀점검 및 정밀안전진단을 통한 구조물을 보강해야 한다. 설계속도는 80~100km/h 수준으로 향상하며 운영은 북한의 전기사정 등을 고려해 디젤기관차 운영을 가정하였다. 레일은 대량화물 수송을 위해 50kg에서 60kg, 침목은 목 침목에서 PC 침목으로 교체해야 한다. 선로전환기(분기기) 교체 및 도상자갈을 보충해야하며 선로전환기는 남한에서 사용하는 전기전철기로 교체해야 한다. 신호설비는 전자식연동장치, 자동폐색장치, ATS 및 CTC설비, 통신설비는 광케이블을 설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궤도설계(재료, 운반로, 적치장소, 공사용 진입로)가 필요하다. 2단계는 교통수요를 고려한 복선전철화 라진-하산 물류사업, 북한의 경제특구 등 여객 및 화물의 수송수요를 고려하여 복선전철로 신선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설계속도 230~250km/h 수준으로 고속화하고 남한의 일반철도 고속화 건설기준을 적용하고 열차의 주행안전성 및 승차감 향상을 위해 전 구간에 장대레일(200m 이상)을 부설해야 한다. <표8> 복선전철건설시 기준 이 경우 개략사업비를 추정해 보면 북한의 노동, 토지, 기초자재(시멘트)와 남한의 자본과 기술요소가가 결합된 경우 사업비의 최소화가 가능하다. 1단계인 고성~함흥의 260.5km 구간의 기존선 개·보수안의 경우는 6,800억원정도 신선안의 경우는 83,62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2단계인 함흥~라진의 486.2km의 경우는 기존선개·보수안의 경우는 12,700억원정도, 2단계는 156,07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의 기준은 남한의 2단가를 적용했으며 용지비는 제외한 것이다. 정확한 산정은 북한의 현장실사를 통해 더욱 정확하게 산정되어야 할 것이다. 소요기간의 산정은 기존선개·보수안의 경우 1개 공사구간을 30km기준, 신선건설은 15km로 하고 북한의 특수사항을 고려하여 용지매수 및 인허가 소요기간은 제외하여 산정하여 보면 1안인 기존선개·보수안은 5년이상, 2단계 신선의 경우는 7년이상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선개·보수안의 경우는 현장조사와 실시설계, 노반 보강공사, 궤도보강공사, 시스템 공사 등이 진행되어야 한다. 신설할 경우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노반공사, 궤도공사, 건축공사, 시스템공사 등이 추진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비의 조달의 경우는 방대한 사업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자원개발, 관광과 연계사업 등을 통해 국내외 자본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남북철도연결의 기술적인 해결과제로는 궤도토목분야는 궤간이 같아 연결에는 문제가 없지만 시설의 보수가 필요하며, 전기 분야는 전력방식(북한은 직류 3,000V, 남한은 교류 25,000V), 신호현시의 차이 등을 개보수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전기기관차 운행 시 운행노선의 전철화가 필요하다. 차량의 경우 직 교류겸용 기관차의 개발이 필요하며 운영분야는 운영과 열차운행계획, 통과방식, 운임배분, 세관절차 등의 협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남과 북의 철도와 도로 협력분야는 과거 어느 때 보다 진전가능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2000년 초반부터 진행된 남북장관급회담, 경의선 철도와 도로연결 기공식. 기본합의서, 열차시험운행, 개성~신의주 철도개보수 현지조사 등을 철저히 분석하여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최근의 북한과 경제협력과 관련하여서는 시장과 인프라 지원에 대한 우선순위 그리고 남과 북의 철도연결과 그 이익,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의 영향력 분석과 우리에 취해야 할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부족한 자본, 기술, 제도, 인적자본 등을 어떻게 인프라 발전에 접목시킬 것인가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5. 맺는 말 이제 북한과의 연계와 함께 대륙철도연계를 고려하여 한반도 철도망의 구축이 필요하다. 북한은 1990년 중반부터 급격히 쇠퇴, 경제난과 폐쇄성을 유지, 우선 철도개발 북한의 교통인프라개발에 있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한반도와 국제철도망의 연계이다. 첫 번째로 노선망은 북한철도의 평양중심을 고려하여 평라선축(자원, 관광)과 경의선축이 우선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 중화학단지인 만포선등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지도5> 북한을 연결하는 대륙철도노선(철도시설공단제공) 두 번째로는 여객은 동북아철도망을 고려할 경우 장거리를 단시간에 운행이 가능하도록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중국은 이미 한반도까지 고속철도노선을 연결해서 운행 중에 있다. 세 번째로 물류의 경우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효율적인 연계수송과 효율성 확보를 위해 평균 60~80km의 속도와 1개 열차당 40~80량의 수송이 가능한 장대화가 필요하다. 러시아의 노선은 이미 복선전철화가 완료되어 있다. 네 번째로는 대규모의 물류기지가 필요할 것인데 벌크와 소비재와 창고 등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광역권의 복합종합물류기지가 필요한데 적정한 후보지로는 위에서 언급한 현황을 토대로 보면 개성, 평양, 신의주, 원산, 함흥, 청진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광의 경우는 금강산과 묘향산 백두산 칠보산 권역의 철도 역세권과 호텔 등을 포함하여 복합적인 리조트 등을 추진하여 적극적으로 자본을 유치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한태『북한철도』 2018년 한국철도운전기술협회 이용상「북한의 인프라 개발방향」월간북한2019년2월호 선교회『조선교통사』 이용상외 번역, 북갤러리 참조 국토교통부, 「제3차국가철도망계획」 일본무역진흥기구 『최근의 북조선경제에 관한 조사』 2018년3월 Kim,Byung-Yeon(2017),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 Cambridge University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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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도운영에 있어 연계성과 운영실태 | 2019.07.22 |
초기 철도운영에 있어 연계성과 운영실태 1. 문제의 제기 우리나라 철도부설과 운영에 있어 재미있는 사실 중의 하나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차와 국철의 연계수송체계가 구축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차가 처음 운행된 것이 1899년 5월17일 청량리-서대문이다. 당시 미국 콜브란에 의해 추진된 사업이었다. 한편 지역 간 철도의 경우는 경인선이 1899년 9월18일 노량진-제물포가 개통되고, 한강철도가 1900년에 완공된 후 서대문역(당시 경성역)까지 1900년 7월에 운행되었다. 초기는 미국의 콜브란에 의해 전차와 지역간 철도가 함께 계획되었다. 한편 경성궤도주식회사는 1927년3월31일에 왕십리- 뚝섬(물류거점)까지 협궤철도로 개통되었다. 이는 동대문까지 연장 운행되었다. 서울-춘천 간을 운행한 경춘선의 경우는 1939년 7월 서울 성동역(제기동)에서 춘천까지 93.5km까지 운행되었다. 한편 경성외곽순환선의 경우는 1930년 12월 용산-원정(원효로)서강-신촌-하현-서소문-서울역- 용산, 디젤동차로 하루 7편 운행되었다. 초기 경의선이 용산을 출발하였지만 후에 현 서울역으로 출발역이 옮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서울의 교통체계에서 전철과 주된 환승이 이루어진 곳이 동대문과 서대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동쪽의 경우는 동대문을 중심으로, 서쪽의 경우는 서대문을 통해 연계수송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용산에서는 경원선과 경의선이 연결되었다. 2. 연계교통현황 먼저 서울의 동쪽의 경우는 전철이 개통된 후 경성궤도, 그리고 멀지 않은 곳인 성동역에서 경춘선이 운행됨에 따라 동대문이 연계교통의 중심에 있었다. <지도> 서울 전차 노선도(한국철도의 역사와 발전1참조) 한편 서울의 서쪽의 경우는 초기 경의선의 출발역이 용산역으로 용산-수색으로 북쪽으로 철도가 운행되었다. <표1> 수도권의 연계교통 서대문역의 경우는 1919년 폐역이 되었지만 그 역사를 보면 매우 흥미롭다. 경인선이 개통된 후 경성역으로 1900년 7월18일 역사 업무가 시작되었다. 1905년1월1일부터는 경부선의 종착역으로 기능하였다. 그해 3월27일 경성역에서 서대문역으로 개명되었고 현 서울역은 남대문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따라서 1905년 경성역이 서대문역이 되고, 남대문역이 경성역이 된 1923년까지는 경성역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경부선?경의선 양선의 직통열차는 초기 운행에 있어 용산?남대문 양 역간을 되돌아 운행할 수밖에 없었으나, 여객?화물 수송이 점차 빈번해짐에 따라 열차 운전시간 단축과 열차 정리 상, 남대문 역(현 서울역)에서 바로 경의선 수색역에 이르는 선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1919년 6월부터 개량공사에 착수하였다. 즉, 서대문역 서쪽의 아현리에 아현(382m) 및 고령(482m) 양 터널을 뚫어 신촌으로 나와 수색역으로 통하는 새로운 선로를 1920년 11월 완성하였다. 이에 따라 경의선은 남대문 역으로 직통하게 되었으며, 또한 동시에 용산역 구내배선 개량공사도 시행되었다. 또한 서대문역은 경성의 상황을 고려해 1919년 3월말에 폐지되었으며 남대문역은 1923년 1월 1일 경성 역으로 개칭되었다. 당시 남대문 역은 협소하여 개축, 증축이 필요했기 때문에, 1922년 6월부터 역의 개축에 착수하여 3년여에 걸쳐 1925년 9월에 준공되어 같은 해 10월 15일부터 새 역사에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새 역사는 승강기, 증기난방 등의 근대적 설비를 완비하였으며, 당시로서는 기능적으로도 신식으로 간판 역에 걸맞은 당당한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 1929년 이후에는 용산?서강?당인리 간 및 서강?신촌 간 용산선에 열차 운전이 시작되었다. 또한, 1940년도에는 용산?서강 간(4.3km) 및 서강?성산천신호소(수색조차장 내) 간 복선과 서강?신촌 간(1.6km) 선로 개량공사에 착수하였다. 이에 따라 직통 화물열차는 경부선 용산역에서 경성 역을 통과하지 않고 직접 경의선 수색 조차장으로 직결되는 한편, 또한 용산역부터는 서강?당인리?신촌 또는 서강?신촌을 거쳐 경성으로 통하는 도시 환상선을 형성하는 열차운전을 개시하게 되어 도시주변 교통은 한층 편리해졌다. <지도> 서울 서부지역 철도노선도(경성외곽 순환선을 포함, 1940년경) 3. 운영 실태 당시의 이용과 관련해서는 전차이용실태와 경인선, 경부선, 경춘선 등의 이용자 등을 분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인선의 경우 개업 당초의 열차는 인천?노량진 간을 오전, 오후에 각각 1회 왕복 운행을 했는데, 경인간 전체 노선이 개통됨과 동시에 1일 5회를 왕복하였다. 당시의 운행 속도는 30~40km/h. 차량은 모갈(2-6-0)형 포화 증기 기관차로, 목제 여객차, 화물차와 함께 미국 수입차량으로 중앙 완충기를 채용하였다. 여객 운임은 1마일(1.6km) 1인당 3등 칸은 1전 5리, 2등 칸은 3전 (3등의 2배), 1등 칸은 5전6리(3등의 3.75배) 이었으며, 경성?인천 간 43.5km 구간에서는 3등 40전, 2등칸 80전, 1등칸 1엔 50전이었다. 화물은 근을 기준으로 요금을 정하는 근 취급 임율을 규정하여 147종의 종목을 지정하였으며, 각 화물의 품종에 따라 1개 또는 1개의 최고 근량을 50근 내지 400근까지의 여러 단계로 구분하고, 이에 대해 운송 거리과 상관없이 단일 임율을 부여하였다. 거리 비례를 채용하지 않은 이유는 전적으로 경성?인천 간의 화물 운임을 기준으로 규정되었기 때문으로 이 운임은 1905년 1월 1일, 경부철도의 영업개시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영업 개시 당시는 노량진 임시 역에서 경성에 이르는 구간의 교통 불편과 한강의 배를 이용한 교통편에 의한 오랜 인습으로 철도를 이용하는 자는 적었지만, 겨울철 결빙 중 및 홍수로 인한 수운의 중지 등으로 철도의 편의성을 알게 된 후부터는 큰 화물을 제외한 대부분이 사계절 내내 철도를 이용하게 되었다. 초기 경부선, 경의선 모두 야간 열차는 운행하지 않고 직통열차로서 초량?서대문 간을 11시간 운전하는 급행 여객열차만 1왕복하였다. 그 밖에 경부선에는 혼합열차 2왕복과 기타 구간 열차 2왕복만이 운행되었으며, 경의선에서는 직통열차가 운행되지 않았으며 각 열차는 모두 평양을 종점으로 하였다. 즉, 용산-평양 구간 여객열차 1왕복, 혼합열차 1왕복, 용산-개성 구간 혼합열차 1왕복, 평양-신의주 구간 혼합열차 1왕복, 그 밖에 부정기 화물열차 1왕복 정도가 운행되었다. 운전 시간도 최단인 남대문-평양 구간 10시간 20분, 평양-신의주 구간 8시간 30분을 필요로 하였으며, 부산-신의주 구간은 도중에 2박을 필요로 하였다. 경부 및 경의선 1907년 4월 20일의 운행시각 개정으로 초량-서대문 구간에 혼합열차 1왕복을 증편하는 동시에 기존 급행열차의 운행시간을 단축시켰다. 1908년 4월 1일부터 경의-무산선의 일반 운수 영업 개시와 부산역 신설 및 부산-시모노세키 간 연락선의 주간 운항 개시에 따라 새로이 부산-신의주 구간을 26시간에 운행(평균 시속 37.7km)하는 직통 급행 여객열차 ‘융희’가 운행되어, 경성 부산 간에 최초로 야간열차 운행을 개시한 이래 2박이 소요되었던 것에 비하여 현저한 진보를 보였다. 그 후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1909년 2월 1일부터 연락선의 주간편이 격일제로 운행되고, 부산-신의주 구간 직통 급행 여객열차를 부산-남대문 간 격일제 운행으로 변경했다. 경인선 통일 당시에는 서대문-인천 간에 혼합열차가 7왕복 운전하였으나, 1907년 4월 20일의 개정으로 급행 여객 1왕복, 혼합 2왕복을 증설하여 총10왕복으로 하였다. 동년 10월 16일에는 황태자의 방한으로 경성 인천 간에 궁정열차를 운행하였다. 한편 서울과 춘천을 연계한 경춘선의 특징은 여객과 화물수송을 주로 하였다. 경춘선의 화물수송은 역세권내의 금광개발(춘천, 인재, 양구, 홍천, 화천)목탄생산, 산림자원 등을 수송하였다. 특징은 수익성이 높은 철도, 여객위주의 철도였다. 당시 영업성적을 보면 1943년에 사철철도 중 2위(km당 평균수입)를 기록하였다. <표2> 경춘선 영업성적 자료: 경춘철도주식회사 영업보고서 당시 다른 교통수단과 비교해 보면 철도가 화물과 수운보다 시간과 수송비면에서 경쟁력이 있어 수송량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표3> 철도와 타 수송단의 비교(화물) 자료: 강원도청 1937년 9월 자료 열차는 여객의 경우 1일 4왕복열차가 운행하였다. 속도향상은 여객열차의 경우 운행시간이 1937년 3시간에서 1941년에 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여객과 화물 혼합열차의 경우는 4시간에서 3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표4> 경춘선의 열차시각표 자료: 경춘철도주식회사 시각표 당시 경춘선은 사철로 운영되었는데 철도이외에도 여객자동차, 화물자동차, 임업, 유원지, 호텔(춘천세종호텔)을 운영하였고 서울?춘천?양양까지의 연결을 구상(중부횡단철도)를 구상하였다. 경춘 철도는 당시 서울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간선으로 중부권의 간선망으로서의 기능과 성동에서 연계하여 서울과의 교통망을 형성하여 많은 여객과 화물을 수송한 것을 알 수 있다. 4. 맺는 말 본 글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철과 지역 간 철도의 연계수송망을 살펴보았다. 당시에도 미비하였지만 지역 내 이동과 지역 간 이동을 고려한 교통체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의 전철 개통으로 4대문내의 주거지가 확장되었고 서울이 수평적으로 확대되었다. 서민교통으로 전철은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였다. 당시 철도는 통근, 통학으로 이용된 사례 등으로 볼 때 향후 철도의 이용자 측면에서의 연구가 좀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철도사 연구에서 향후 좀 더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부문을 언급하면서 좀 더 많은 연구성과를 기대해 본다 <향후 철도사 연구> 1. 철도이용자측면에서의 철도의 역할 2. 연계교통과 교통수단간 경쟁 3. 우리나라의 자주적인 철도건설 4. 제국철도에 대한 비교연구 5. 지역수준의 철도연구(역과 지역 변화) 6. 사설철도연구 7. 수송량에 따른 역의 기능변화 8. 해방 전후의 철도의 기능과 역할연구 9. 철도인물론 10. 북한철도관련 연구 11. 동아시아 철도비교연구(한국, 일본, 타이완, 중국, 러시아 등) [참고문헌] 이용상외(2017), 한국철도의 역사와 발전1,2,3, 북갤러리 선교회(2017), 조선교통사1,2, 한국철도문화재단 출판 <기타 참고 사이트> 1. 국립중앙도서관 http://www.nl.go.kr/nl/index.jsp 2. 국가기록원 http://www.archives.go.kr/next/viewMain.do 3.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http://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hn 4. 국회도서관 http://www.nanet.go.kr/main.jsp 5. 남산도서관 http://nslib.sen.go.kr/nslib_index.jsp 6.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6층 고문헌자료실 http://library.snu.ac.kr/index.ax 7. 국사편찬위원회 전자도서관 http://library.history.go.kr/index.ax 8. 한국언론진흥재단 고신문 자료 http://www.kpt.or.kr 일본 1.국립국회도서관 디지털 컬렉션 http://dl.ndl.go.jp/ 2. 국립공문서관 http://www.archives.go.jp/ 3. 아시아역사자료센터 http://jacar.go.jp/ 4. 고베대학 신문기사문 http://www.lib.kobe-u.ac.jp/sinbun/index.html 5. 제국의회 회의록검색시스템 http://teikokugikai-i.ndl.go.jp/ 6. 국제일본연구센터(교토소재) 자료실 7. 학습원 대학(도쿄소재) 동양학연구소 자료실(우방문고와 비공개 자료) 8. 시부사와에이지 자료관: 조선사철 자료(도쿄) 9. 일본논문 Cini(일본정보센터) 10. 기타 구 제국철도협회자료실, 각 철도박물관 자료실(교토, 사이타마 철도박물관) 중국 1. 심양 당항관(자료관) 2. 장춘, 길림성 사회과학원 만철자료관 타이완 국립중앙도서관 www.ntl.edu.tw 국학원 www.th.gov.tw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 아카이브 기록 청(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http://www.archives.gov/dc-metro/washington/) 록펠러 재단 자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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