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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도] 일본 철도의 해외 진출(2) | 2021.04.15 |
일본 철도의 해외 진출 2.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활동 : 일본 철도의 대만 진출 대만의 고속철도는 1985년부터 계획이 수립되어 2000년 3월에 토목공사가 착수되었는데 2000년 12월에 일본연합(컨소시엄)이 차량과 전기설비를 수주하였으며, 2002년 7월에는 일본연합이 궤도와 역의 건설도 수주하여 2005년 10월 개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였다. 건설 경위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만의 타이베이~카오슝 345km 구간의 고속철도는 현재 4시간이 소요되는 운행시간을 최고 속도 300km/h로 1시간 30분에 주행하여 무려 2시간 30분을 단축하게 된다. 차량 편성은 12량, 좌석은 986석, 차량 길이는 최장 300m, 회전 가능한 좌석 900석, 최소 곡선반경은 R=6,250m, 축중은 25.5톤, 터널 단면적은 90m2로 일본의 신칸센 60.4m2보다 크다. [표 5-2] 대만 고속철도에 대한 일본의 진출 경위 *자료 : 해외철도기술협력회(2003), [2003년도 사업보고]를 참조하여 재작성 이 구간은 1일 수송인원이 개통시에 17만 명, 2033년에 35만 명으로 예상하고 개통되었다. 차량운행 간격은 피크시 10분, 수요 유발시 6분 간격으로 운행할 예정이다. 영업시간은 오전 6시부터 24시까지이다. 차량은 신칸센 700계 차량으로 신호방식은 ATC, 동력분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열차운행 횟수는 개통 시점에 편도 약 88회이며, 약 30편성이 운행될 예정이다. 대만의 인구밀도는 620인/km2로 일본 338인/km2 우리나라 467인/km2보다 높아 수송효율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만의 고속철도는 총 345km에 16조 원이 투자되고 있는데, 일본 기업연합이 차량부문 등을 포함해서 5조 3천억 원을 수주하였다. 일본 기업은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미쓰이물산 등 7개 기업 등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가 결속하여 수주하였다. 운영은 BOT방식으로 대만의 5개 기업(전기, 해운, 보험회사 등)과 일본 기업 등이 투자한 대만 고속철도공사에서 35년간 고속철도를 운영하고, 50년간 역세권을 개발·운영하게 된다. 이러한 대만고속철도에 일본 신칸센이 진출한 경위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0년 6월 대만 교통부 교통연구소의 타당성 조사를 바탕으로 교통부는 대만 서부고속철도 건설을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원래 1992년 7월경 착공하여 1999년에 완성할 예정으로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1992년도 예산에 조사비용만 포함되어 있었던 관계로 본격 착공은 지연되었다. 1994년 12월, 대만 정부는 자국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여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BOT방식에 의해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교통시설에 대한 BOT사업법을 제정하였다. 1996년 10월, BOT사업자의 사전 자격심사가 고시되었으며, 1997년 3월 중화고속철도연맹과 대만고속철도연맹 등을 후보자로 선정하였다. 중화고속철도연맹은 중화개발신탁을 간사로 하고 영민(榮民), 중화강철(中華鋼鐵), 중화공정(中華工程), 원동항공(遠東航空) 등과 같은 대만의 주요 기업과 일본의 미쓰이(三井)물산, 미쓰비시(三菱)중공업, 가와사키(川崎)중공업, 도시바(東芝) 등이 일본의 신칸센시스템을 공급하는 형태로 참여하였다. 한편, 대만고속철도연맹은 대륙공정(大陸工程), 장영해운(長榮海運), 부방산보(富邦産保), 동원전기(東元電氣), 태평양전선전기(太平洋電線電氣)의 5개 기업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GEC Alstom과 Siemens가 TGV와 ICE시스템을 공급하는 형태로 참여하였다. 1997년 8월 두 그룹은 투자계획서를 대만 교통부에 제출하였다. 1997년 9월 평가조사 결과 정부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계획서를 제출한 유럽연합(대만고속철도연맹) 시스템이 우선 교섭대상으로 선정되었으며, 1998년 7월 사업권에 대한 교섭이 진행된 후 대만 교통부와 유럽연합간에 사업권 계약이 성립되었다. [표 5-3] JR과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참여 내용 *자료 : [요미우리신문중부사회부(讀賣新聞中部社會部)](2001), [바다를 건너간 신칸센(海を渡る新幹線)], 주코신쇼(中公新書) 61을 참조하여 작성 그 후 일본 측은 대만고속철도연맹이 채용예정인 시스템에 대해 다시 교섭에 들어갔고, 그 결과 일본 측 시스템도 선택에서 배제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얻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신칸센 건설·운영 관계자인 JR회사와 ‘해외철도기술협력회’ 전문가들의 참여로 대만에서의 기술 교류회 및 세미나 개최, 대만 측 고속철도 관계자 및 언론관계자들에 대한 신칸센 시찰 등을 통해 대만 측의 신칸센 기술력에 대한 이해도 제고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더불어 일본연합에 미쓰비시상사, 마루베니, 스미토모상사 등을 가세시켜 수주를 위한 다각적이며 전략적인 노력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9년 4월 대만 정부(대만고속철도주식회사)로부터 유럽연합 및 일본연합 양측에 정식으로 제안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서가 발부되었다. 1999년 12월 28일 대만정부(대만고속철도주식회사)는 일본연합에 우선 교섭권을 부여하여 2000년 12월 대만 정부와 일본연합 측이 최종 계약서를 체결하였다. 2003년 1월 일본연합 측은 궤도공사부문에 있어서도 전 5공구 중 타이베이 지하 구간을 제외한 4공구를 수주하는 데 성공하였다.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JR 관계자와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참여가 매우 큰 역할을 하였는데, 기술 교류회뿐만 아니라 신칸센 시승식, 기술자로서 대만의 이등휘 총통과의 회담 등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가 수주에 큰 힘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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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철도] 일본 철도의 해외 진출(1) | 2021.04.05 |
일본 철도의 해외 진출 1. 일본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발전과정과 활동 (1)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출범 철도의 위상과 기술을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일본 철도는 철도기술협력을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사단법인인 ‘해외철도기술협력회(Japan Railway Technical Service 약칭 JARTS)’는 운수성(현재 국토교통성)의 협력과 일본국유철도, 일본철도건설공단과 제도고속도교통영단 등의 지원을 받아 철도에 관한 모든 기술을 축적하는 기관으로, 1965년 9월 1일 운수대신의 허가를 받아 설립되었다. 출범 당시 이 협회는 소규모 조직이었지만 운수성으로부터의 위탁 연구와 (사)일본트럭협회, (재)일본선박진흥회 등의 보조금에 의한 연구사업을 수행하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한국의 지하철건설과 철도전철화계획 그리고 아르헨티나국철의 전철화계획, 이란 국철의 전철화계획 등 해외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주요 업무인 기술컨설팅이 상대국의 사정이나 국제사정 등에 의해 수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먼저 1975년 전후에 현지사무소까지 설치한 콩고공화국(당시 자이르공화국) 철도건설계획이 석유 위기에 의한 콩고의 국가적인 경제 악화로 인해 당초 계획이 변경되어 거액의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또한 1987년 일본국철 민영화에 의해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 조직과 인원은 확충된 반면, 해외프로젝트는 감소하여 경영이 악화되었다. 그러나 운수성, (재)일본선박진흥회, 철도업계와 재계 등의 협력에 의해 협회에 기금이 설치되고, 기금의 증액에 의해 재정이 안정되었다. ‘해외철도기술협력회’는 사단법인으로서 해외 철도에 관한 조사, 정보 수집, 철도전문가의 파견과 영입, 외국 철도산업에 대한 소개 등의 홍보활동과 외국 철도와 도시철도에 관한 컨설턴트업무 등을 실시하여 왔다. 이러한 업무와 관련 운수성, 국제협력사업단(JICA), 해외경제협력기금(OECF), (재)일본선박진흥회 등으로부터 많은 수탁연구를 받았고, 업무의 수행에 있어서도 국철(현재 JR그룹), 일본철도건설공단, 제도고속도교통영단 등의 적지 않은 지원과 협조를 받았다. 그 결과 일본 ‘해외철도기술협력회’는 60여 국가의 프로젝트를 실시할 수 있었고, 기술협력은 400건을 넘고 있다. (2) 발전과정 1) 해외철도간담회 발족 일본은 1960년 12월 국민소득배가계획이 각의에서 결정되면서 고도 경제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당시 해외와의 경제나 교통분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철도관계의 유력자와 전문가가 모여 철도산업의 해외 진출과 철도기술의 해외협력에 대한 의견 교환의 장으로서 ‘해외철도간담회’를 1961년 6월에 발족하였다. 이 회의는 매월 1회씩 회합을 하고, 해외기술협력 경험자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자료를 수집, 검토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한편, 일본 정부는 수출 촉진, 자원 확보, 평화 등을 목표로 개발도상국에 대해 경제 및 사회개발의 원조프로그램을 추진하였다. 초기 정부 차원에 의한 자금협력은 식민지시대의 과오에 대한 배상의 형태였지만, 1958년부터는 정부의 직접 차관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자금협력이 진행되었다. 정부 직접 차관의 실시기관으로서 일본수출입은행 이외에 1961년 3월 해외경제협력기금이 설치되고, 기술협력에 대해서는 1962년 6월 해외기술협력사업단(OTCA)이 발족되어 정부 차원의 기술협력을 일원화하였다. 그런가 하면 국철에서는 소고(十河) 국철 총재의 주장으로 1957~1958년에 걸쳐 개최된 네 번의 아시아철도수뇌회의의 영향으로 철도기술의 필요성이 높아져 1962년 4월 ‘해외철도간담회’를 개칭하여 ‘해외철도협의회’로 명칭을 바꾸고, 정보 교환, 강연회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한편, 1964년 10월 도카이도(東海道)신칸센의 개통은 발전도상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에도 그 기술의 우수성이 알려져 수출 진흥을 추진하였던 정부 관계자는 이 기회에 w철도컨설팅에 관한 상설기관을 설치하여 우수한 철도기술을 기반으로 관련사업의 시장 개척과 적극적인 수출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또한 국철은 철도기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단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단체의 설립을 바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철도협의회’는 프랑스 등을 참고로 하여 기술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공공과 민간부문이 일체가 된 철도컨설턴트의 설립을 목표로 정하고, 이 협의회를 법인 격의 해외기술협력 실시기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관계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운수성, 국철의 지도에 기초해 정관의 검토, 회원의 선정, 기존 컨설팅회사와의 조정을 통하여 1965년 4월 발기인대회와 같은 해 7월 7일 창립 총회를 개최하였다. 총회에서는 ‘해외철도기술협력회의’의 설립이 결정되어 회장으로 전 운수장관인 나가노(永野) 씨가 임명되었다. 법인 격으로서는 운수성으로부터 1965년 9월 1일 사단법인으로의 설립 허가를 받았다. 피로연은 총리, 운수장관, 국철 총재, 해외기술협력사업단 이사장, 경단련 부회장 등의 축사를 받는 등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2) 초기 성장기(1965년~1970년) 초기 사무국은 사무국장 아래에 총무부와 기술부를 두고 사무국원 7인, 회원 85인, 찬조 회원 12개 회사로 출발하였다. 최초의 해외조사사업은 (사)플랜트협회가 실시한 멕시코시 지하철계획 기초조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이 조사에 전문가를 파견하였고, 이와는 별도로 매년 해외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초기에는 협회 독자적으로 전문가를 파견하여 조사를 수행하였다. 초창기 활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한 것은 운수성으로부터 위탁된 1967년~1971년까지의 연구로, 연구 테마는 ‘아시아 간선철도망계획에 관한 예비조사(조사대상국 :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와 해외철도기술협력연구(태국, 대만, 이란의 속도 향상, 말레이시아의 낙뢰대책)가 실시되었다. 그 후 1970년 1월에 나가노(永野) 회장의 서거로 신칸센의 기사장이었던 시마(島)당시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였다. 시마 회장은 해외로부터의 기술협력 요청이 점점 더 증가하자 협회체제의 강화를 확신하고, 상근 임원과 사무국 인원의 증원, 기획위원회 등을 설치하였다. 자금 면에서는 회비만으로는 부족하여 해외기술협력사업단으로서의 수주, (사)일본플랜트협회, (재)일본선박진흥회 등으로부터의 수탁사업, 보조사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요청하게 되었다. 이 결과 (재)일본선박진흥회로부터는 1970년 12월부터, 그리고 해외기술협력사업단으로부터는 1971년 11월부터 수탁을 받아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진행된 이 협회의 해외기술협력은 정부의 개발도상국 원조정책의 강화와 관계기관의 이해와 협력에 의해 급증하게 되었다. 창립 후 10년간(1965년~1975년)에 해외 협력은 100건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에서 서울지하철건설과 국철전철화계획의 컨설턴트업무(64명 파견) 등에 참여하게 되었다. 1974년 8월 해외기술협력사업단이 기관 통·폐합을 통해 국제협력사업단(JICA)으로 개편되었다. 또한 1975년에는 해외경제협력기금(OECF)과 일본수출입은행과의 업무 조정에 의해 신규 차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해외경제협력기금이 업무를 수행하도록 되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협회는 성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3) 재정 위기의 극복(1975년~1985년) 1971년 콩고공화국(당시 자이르공화국)에 대해 일본 정부는 철도건설협력을 약속하고 150km 구간의 신선 건설을 계획하고 있었다. 약 345억 엔의 차관이 공여되는 사업을 위해 이 협회는 사전조사단을 파견하고, 1974년에 현지사무소를 설치, 계약교섭의 촉진과 조사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동전쟁에 의한 오일쇼크는 비산유국인 콩고공화국의 경제를 심각한 국면으로 몰아 결국 철도건설계약은 파기되었다. 이로써 협회는 콩고로부터 철수하였고, 이 결과 많은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국면에서 (재)일본선박진흥회와 국철관련업계, 경제계로부터 협력을 얻어 3년 만에 15억 엔의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재정적인 기반이 마련된 후 가장 중요한 사업은 이란 철도사업이었는데, 약 30명의 전문가가 상주하여 철도컨설팅업무를 수행하였다. 석유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전철화를 서둘러 진행하였다. 이와 함께 협회는 조직을 정비하였으며, 사업 실시에 있어 국철, 일본철도건설공단, 제도고속도교통영단, 회원사들의 참가 하에 기술진 보강을 꾀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사업 규모는 1982년 23억 엔으로 1981년 7.5억 엔의 3배에 이르게 되었으며, 1983년에는 25억 엔, 1984년에는 20억 엔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하였다. 이는 1978년 2억 3,000만 엔에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었다. 그 후 JICA의 수주와 OECF의 차관에 따른 상대국과의 계약이 늘어남과 동시에 민간의 요구도 늘어 업무량이 증가하였다. 직원 수도 1983년 35명에서 1985년에는 정부기관으로부터의 파견을 포함해서 70명으로 두 배로 증가하였다. 기금 또한 1984년 말 현재 21억 엔으로 증가하였고, 회원 수는 개인이 39명, 단체회원이 133개 회사로 증가하였다. 4) 조직 및 활동 ‘해외철도기술협력회’는 사단법인의 형태로 운영되며, 회원 수가 2003년 3월 31일 현재 단체 120개 회사, 개인 67명이다. 임직원은 회장 1명, 이사장 1명, 상무이사 4명, 이사 33명(회장, 이사장, 전무이사 포함), 감사 3명이며, 직원은 90명(국토교통성 등으로부터 직원 파견 포함)에 이르고 있다. 임원의 구성은 2004년 3월 31일 현재 회장에 이마이(今井)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 전무이사는 마쓰모토(松本)전 국토교통성 심의관, 이사는 각 철도회사와 철도건설공단, 철도관련협회 등에서 참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JR히가시니혼 등 JR 각 회사, 철도건설운수시설정비지원기구, 일본통신주식회사, (사)일본철도기술협회, 정보통신네트워크산업협회, (사)일본철도차량공업회, (사)일본철강연맹, (재)철도종합기술연구소, (사)일본전기공업회, (주)도쿄지하철, (사)일본건설업단체연합회, (사)일본철도전기기술협회, 일본교통기술주식회사, (사)일본무역회, (사)해외운수협력협회, (사)일본민영철도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단체회원은 철도 운영업체와 관련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개인회원의 경우에도 일반인이 아닌 철도 관련 기업이나 관련 단체의 장이 참여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단체회원의 경우는 이사회의 승인을 얻어 가입이 가능하며, 입회비는 12만 엔, 그리고 연간 1구좌당 12만 엔의 회비를 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재정 규모를 보면 2003년 현재 기금이 25억 8,687억 엔, 당기수입이 23억 8,085억엔이다. 수입내역을 보면 사업금 수입이 91.8%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회비 수입이 2.4%, 단기차입금이 2.1%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로부터의 수의계약에 의한 보조금 성격의 사업비는 59,123천 엔으로 전체 수입 중 2.48%를 차지하고 있다. 보조금의 선정 이유는 해외 철도에 관한 기술협력을 70개국 이상과 실시하는 등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유일한 기관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3년에 실시한 주요 사업을 보면 국제협력사업단(JICA)의 개발조사사업으로 인도네시아 ‘자바 간선철도전철화 실시 설계조사’, 폴란드 ‘국철 민영화계획 조사’ 등 3건에 참여하였다. 국제협력은행(JBIC) 차관 공여사업으로는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간선철도 개량사업, 중국 ‘중경시의 모노레일건설사업’ 등 6건, 국제협력은행의 조사사업으로는 인도네시아, 이란 등의 사업, 경제통산성사업으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MRT고가화계획 조사’를 수행하였다. 일본무역진흥회(JETRO)와 관련된 사업으로는 ‘베트남의 철도와 물류망 정비사업’, (사)해외운수협력협회(JTCA)의 보조사업으로는 인도네시아와 터키 철도 정보 수집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대만 고속철도건설계획 참여와 중국 고속철도건설계획 협력, 국제협력사업단의 위탁에 의해 외국의 철도 관련 요인과 연수생을 6건에 44명을 초청하여 시찰과 연수업무를 수행하였다. 또한 단기전문가를 3개국에 5명을 파견하고, 홍보책자 발간(JARTS : 격월간 발행), 국제회의 출석 등 다양한 해외 철도업무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해외 철도로부터의 요청에 의한 연구가 눈에 띄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도계획 조사’를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설치한 캘리포니아고속철도위원회로부터 위탁을 받고 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영국 ‘런던~글레스고우 간 고속철도 계획 조사’는 영국 정부인 SRA로부터 요청을 받고 조사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표 5-1] 수입 내역(2002년 4월 1일~2003년 3월 31일 결산 기준) *자료 : 해외철도기술협력회(2003), [2003년도 사업보고]를 참조하여 재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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